한국일보

소음 사라진 공간에 더 풍요한 삶이 가득

2002-02-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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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스코트 새비지 엮음/나무심는사람 펴냄

단 며칠동안만이라도 TV와 라디오의 플러그를 뽑아 보라. 소음이 사라진 공간의 침묵이 얼마가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질까. 그러나 그 어색함은 잠시. 서서히 그 공간은 따스한 대화와 평안한 정신적 휴식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은 글자 그대로 정말 플러그를 뽑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쓴 책이다. 이 책에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21세기 문명에 탑승하는 것을 거부하고 주류사회에서 비껴나 자연속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러다이트(가계 혐오자)와 종교 공동체인 아미쉬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인 ‘플레인’에 실린 글들 가운데 고른 것들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기본정신은 책의 목차에 잘 드러나 있다. ‘스스로 삶을 만들어 가기’ ‘스스로 치유하기’ ‘스스로 생산하기’ ‘스스로 벗어나기’ ‘스스로 돕기’ ‘스스로 지식과 지혜 구하기’….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필자들은 대부분 운명적으로 이런 공동체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이런 삶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이다.


이런 생활 방식은 문명의 관점에서 봤을때는 크게 불편한 듯 보인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삶이 더 풍성해 졌다고 밝히고 있다. TV에서 빨래건조기에 이르기까지 이런 것들 없이 살겠다고 결심했을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졌다고 고백한다. 주부작가 메리 앤 리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는 것은 저녁을 짓는 동안 거실에서 노는 내 아이들에게 더 주의를 쏟을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는 것은 내 마음을 채우는 것들에 대한 더 많은 통제력을 가진다는 뜻이며 침묵을 편안하게 받아 들일수 있다는 뜻이다."(151쪽)

그러면서 이들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은 가슴을 저미게 한다. "지난 시절 그저 손도구들만 사용하며 살아온 일반 대중들에게도 집에서 자신의 아이들과 늙은 부모를 돌볼 시간은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모든 신기한 발명품과 편리한 제품이 많이 나왔음에도 우리는 병든 부모를 돌볼 시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변했을까"(185쪽)

정신없이 바쁘게, 그러나 의미는 잘 깨닫지도 못한채 일상을 살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안겨준다. 그 울림이 곧바로 실천으로 연결되기는 힘들겠지만 가끔은 단식하듯 그런 삶의 방식을 적용해 보는 노력도 괜찮을 듯 하다. 가령 TV와 라디오 없이 며칠 지내기 같은 것 말이다. 해보면 느껴지는게 있겠지.

<조윤성 기자>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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