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족장에서 IMF주부로.
이미숙이 <단적비연수>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말끔히 벗어던졌다. 새 영화 <베싸메무초>(강제규필름, 전윤수 감독)에서 가정주부로 나섰다. 그것도 보통 주부가 아니다. ‘IMF주부’다. 가장 역의 전광렬이 실직하고, 온 가족은 아파트에서 쫓겨나갈 위기에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숙은 직접 돈 벌이에 나선다. 살림 재주밖에 없는 평범한 주부가 할 수 있는 돈 벌이로는 무엇이 있을까. <베싸메무초>에선 성공한 옛 짝사랑 남자를 통해 도발적인 제안을 던진다. "1억 원을 줄 테니 하룻 밤을 함께 지내자!"
이미숙으로선 새로운 연기 폭을 선보여야 될 배역임이 분명하다. <단적비연수>에서 처럼 야욕 넘치는 형형한 눈빛을 내뿜어선 안된다. 대신 고단한 삶에 찌들어, 끝낸 악밖에 남지 않은, 그러면서도 가정을 지키는 쉽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해야 된다.
이 때문인지 이미숙은 <베싸메무초> 촬영 현장에서 예민한 모습이다. 감독이 OK 사인을 내도 자기 욕심에 차지 않으면 수 차례 재촬영을 자청한다. 자기 촬영이 없을 때도 촬영장 한 켠에서 엑스트라들과 어울리며 연기 지도를 한다.
이미숙은 "모든 스태프들이 혼신의 힘을 다했던 <단적비연수>의 흥행이 기대치에 못미쳤던 것이 나를 더욱 단단히 무장시켰다. 한 순간이라도 소홀히 하면 영화의 완성도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베싸메무초>에선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생각 뿐이다"고 밝혔다.
정경문 기자 moon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