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빠른 신뢰회복 급선무"

2000-12-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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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종교계 2000년을 돌아본다

▶ 개신교계 좌담회

뉴밀레니엄이라고, 들뜨고 흥분된 가운데 맞았던 서기 2000년이 간다. 올 한 해도 여느 해와 별반 다른 것은 없었다. 일년 365일이 어김없이 흘러갔고, 새 달력은 날아오고, 사람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끝내지 못한 일들을 대충 접어둔다. 교회들은 어땠나?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조용하지 않았던 한인교계도 지난 일을 정리하고 새 일을 계획해야 할 때다. 남가주 목회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목회자들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석자-김광진목사(LA한인연합감리교회), 박성근목사(LA한인침례교회), 손인식목사(베델한인교회), 오정현목사(남가주사랑의교회)

■사회 및 정리-정숙희 기자


■사진-홍재철 기자

△사회-떠둘썩하게 맞았던 2000년도 다 갔습니다. 지난 한 해 이민교계를 지켜보면서 느낀 점들을 말씀해 주십시오.

▲오정현목사-1년은 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5년, 10년을 보면 교계가 많이 바뀌는 것을 봅니다. 지난 10년새 LA의 리더들이었던 김계용, 임동선, 김의환, 조천일목사님들이 모두 일선에서 물러나셨지 않습니까? 저희 교회도 벌써 1.5세 장로가 나오는등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인 커뮤니티는 사회적으로나, 교회에서나 리더십의 대지각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의미에서 2000년은 이를 앞둔 숨고르는 시기였다고 느껴집니다.

▲박성근목사-LA한인타운의 목회현장에서 일하면서 교계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느낀 한 해였습니다. 초창기 이민사회에서는 교회가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지금은 교회 따로, 이민사회 따로 입니다. 교회는 사회적 봉사와 섬김에 앞장서는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광진목사-미본토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저희 교회는 2004년이면 100년을 맞습니다. 그 역사는 교회가 이민사회고, 이민사회가 교회였던 세월이었습니다. 초창기 교회는 교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김치를 담가주면서 목회했습니다. 요즘 교회사역과는 너무도 다른 진짜 목회지요. 지금은 교회만 크고 숫자만 많았지, 사회적 영향력은 크게 줄어 안타깝습니다.

△사회-올해 후반기는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문제로 사회적 질타도 많았고 목회자들의 탄식도 들려왔습니다. 교계의 고질적 병폐인 재정문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성근-교회협의회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초기의 취지가 희석되고 정치화되어 생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일이 아니라는 방관자적 태도를 보여온 책임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한편 교협이 실제로 남가주의 모든 교회를 대표할 만큼 영향력을 가진 단체가 아닌데도 모든 교회가 한꺼번에 비판받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는 교회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비판도 있다는 생각도 하지요. 교계의 재정은 누가 맡든 투명하게 운영되는 제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김광진-교협 문제는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교계뿐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재정비리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기독교인 아닙니까? 교협 문제도 어느쪽이 나쁘다고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교회 전체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수많은 목사들이 땀 흘리며 열심히 목회하는 그것만으론 해결 안되는 문제입니다. 양화가 조용히 가만있으면 악화가 나와 설치는 것이지요. 대형교회 목사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손인식-교회를 이끌어가는 긴 역사의 과정속에 나타나는 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후에 남는 것은 이런 부정적인 것들이 아니라 언제나 좋은 자취였습니다. 이 문제는 목사들이 해결해야할 문제이고, 또 잘 극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기독교인이 타종교인에 비해 부패가 심하다는 시각보다는 모든 인간속에 부패함이 있다는 시각에서 보는 것이 공정할 것입니다. 아울러 바로 이런 위기 다음에 역반응으로 강한 성령의 바람과 역사가 임할 것이란 기대도 가져봅니다.

△남가주의 한인교회수는 교계 일각의 주장대로 1,300개가 아니라 실제로는 800개 정도인 것으로 최근 집계됐습니다. 그 엄청난 차이는 허수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교회가 줄어든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이민교회의 성장이 둔화되는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오정현-숫자가 준다고 교회가 쇠퇴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교회의 예를 보면 큰 교회들은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민교회는 80년대까지만해도 목사가 땀 흘리고 충성하면 다 발전했으나 90년대 이후 그것만으론 안되는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으므로 지도자 한사람이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갖고 창조력과 생명력있는 사역을 하면 교회는 부흥할 수 있습니다.

▲박성근-크리스천의 숫자나 영향력이 줄었다기 보다는 정리되고 안정되는 기간이라고 봅니다. 교회 난립현상이 정리되면 교회의 질이 높아지게 되므로 어떤 면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보다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손인식-교포수는 늘어나는데 교회가 줄어드는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시대에 복음의 파워가 없어진 것인가, 아니면 복음을 등지는 사람이 많아진 것인가, 저는 후자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항의 세력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죠. 사회적 측면에서나 종말적 상황에서나 크리스천과 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교회들이 점점 대형화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가 일을 많이 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경쟁적인 성전건축과 기업화 경향등 비난도 많습니다. 더구나 작은 교회들은 "기껏 전도해 신자를 만들어 놓으면 대형교회가 뺏어간다"고 불만을 토로하는데 대형교회 문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정현-어느 교회든 세가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할 일, 교회 자체를 위해 할 일, 세상을 향해서 할 일이죠. 현재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님들 모두 다 작은 개척교회에서 시작한 분들입니다. 주어진 여건속에서 그 세가지 할 일을 성실히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시대에 맞는 그릇을 준비시켜 사용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손인식-처음부터 대형교회를 지향해 목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숫자가 불어나 교회가 커지는 것이지요. 대형이냐 소형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가족교회란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작은 교회는 대형교회의 용기를 갖도록 존중해주고, 대형교회는 작은 교회의 가족같은 개념을 갖도록 서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동등한 파워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박성근-세상적인 가치의 잣대로는 작은 교회는 실패한 교회고, 큰 교회는 성공한 교회라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이 필요해서 만든 교회이며, 각자 특별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대형교회에서는 적응을 못하고 작은 교회에 가서야 열심히 봉사하는 분이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익명성을 원하기 때문에 대형교회가 편한 분도 있지요. 크기를 따지기 보다 교회의 필요와 기능적 측면에서 보면 모든 교회가 다 귀하게 여겨집니다.

▲김광진-20명 모이는 개척교회에서 목회생활을 시작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참 좋았더라고, 소형교회 목사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얼마전 한국인이 몇 안되는 소도시에서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그 곳이야 말로 정말 목회하고픈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 곳에선 아무리 잘 해봐야 만년 소형교회지요.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적인 교회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세 목회에 관해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렇다할 모델 사역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데 어떤 계획들이 있습니까?

▲오정현-제자훈련을 통해 담임목사의 철학을 2세, 3세에게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언어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이므로 어떤 모델이 좋다기보다 자기 교회의 문화에 맞는 방법으로 동일한 철학과 사역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선교적 영성과, 북한교회의 순교적 영성, 그리고 이민교회의 국제적 영성이 어우러지면 우리 민족은 앞으로 세계속에 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광진-2세목회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도전이며 축복입니다. 일부 1세 목사들은 2세 목회에 인색하지만 비전을 갖고 앞을 보며 과감하게 독립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0년동안 초창기 이민세대의 후손인 2세들은 모두 한인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들이 새로 이민오는 1세들만을 생각했지, 영어권 2세들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우리 자녀 중심의 2세 목회가 아니라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을 향한 목회, 나아가 타민족과 손잡는 목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손인식-지난 30여년간 2세 목회는 1세에서 2세로 점핑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최근 들어 그 중간에 1.5세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세가 직접 2세를 다루지 않고 30대의 1.5세들이 중간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요즘 한인교회들의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2세 목회는 언어와 대화의 장벽이 있다고 해도 뜻이 같고 함께 기도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테크노 시대입니다.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기술과 정보가 급변하고 있는데 이런 시대에 맞는 목회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광진-사이버 시대 젊은이들의 의식구조는 우리와 너무 다릅니다. 따라서 목회도 이들에 맞게 전문화되어야 하며 그들에게 과감하게 일을 맡기고 함께 일하는 구조로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박성근-교회의 본질은 생명과 복음이고 테크노는 수단과 방법일 뿐입니다. 이것이 영성을 넘어서면 위험하지요. 사이버교회다, 영상교회다 하지만 잘못하면 사람들이 기계화, 비인간화될까 우려됩니다.

▲오정현-현실을 복음으로 받아들여 인터넷과 사이버교회도 자연스럽게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생산성을 갖고 생명력 있는 인터넷 사역을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인터넷으로 재직회도 열고, 양육과 복음전도, 제자훈련도 하자는 것이지요.

▲손인식-30-40년전 미국서는 드라이브인 극장과 식당, 예배가 성업했으나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TV복음전도와 크리스천 락뮤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젊고 새로운 것이 미래를 끌어갈 것 같아도 얼마 안 가 쇠퇴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요소, 즉 인격의 접촉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현실을 복음으로 잡는 도구로는 사용하지만 인간관계의 접촉을 위해서는 교회가 전통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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