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책과 책방으로 넘치는 곳 ‘케임브리지’

2000-07-1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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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바드와 MIT 자리잡은 학문과 문학의 도시

뉴욕이 수퍼모델과 돈이 모이는 곳이라면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는 학자들과 문필가들이 모이는 곳. 책을 들고 있지 않으면 방문자도 마치 옷을 벗은듯 허전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물론 여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커피샵에는 랩탑 모니터에 열중한 사람들, 통근열차에는 신문에 코를 박은 사람들이 눈에 띄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악세사리는 대체로 책이다.

하바드 대학과 MIT가 지배하는 이 도시는 식민지 최초로 인쇄소가 생긴 곳이기도 하지만 미국내에 케임브리지만큼 다양하고도 풍부하게 책을 고를 수 있는 곳도 없다. 이 고장 출신 저명 문인들인 헨리 제임스, 앤 브래드스트릿, 앨리스 제임스,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 마가렛 풀러, 로버트 프로스트, 유진 오닐, 거트루드 스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말할 것도 없고 하바드 코압의 메인 로비 안쪽에는 주로 하바드 교수들인 현 거주자들의 책들도 가득 진열되어 있다.

하바드 스퀘어 코압은 책 말고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면적의 공간을 책에 할애하고 있다. 어느날 오후에 들러 1층과 2층에 진열된 책들을 살펴보고 코압 카페에 들르거나 2층에 마련된 푹신한 소파에 자리잡고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워낙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 조금 한적한 곳에 있는 책방들이 궁금해진다.


사실 거기서 바로 길모퉁이를 돌아 브래틀 스트릿쪽으로 가면 ‘워즈워드 북스’가 자리잡고 있다. 반스 앤 노블과 보더스 체인점이 판을 치는 요즘, 드물게 보는 독립 서점인 워즈워드 북스는 책으로 터져 나갈듯한 2층 건물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밤 11시15분에 문을 닫기 때문에 밤늦게 어슬렁거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도시내 다른 책방들과 마찬가지로 워즈워드도 저자들을 초청하는 강의 및 모임을 주최하는데 최근에는 마릴린 몬로의 일생을 소설화한 ‘금발’을 쓴 조이스 캐럴 오우츠가 연설했다.

일단 책을 골라 책방을 나왔다면 브래틀 스트릿에는 앉아서 읽을만한 장소가 많다. 기차역 근처 벤치도 좋고 서쪽으로 반 블락을 걸어 아프리카풍 찻집인 ‘카페 알지에’나 1940년대부터 영업해온 ‘빌링스 앤드 스토브 드럭스토어/소다 파운틴’에 자리를 잡아도 괜찮다. 동쪽으로는 ‘피츠 커피 앤드 티’, 한 블락 건너 처치 스트릿에는 ‘스타벅스’도 있다.

처치 스트릿으로 접어 들면 ‘글로브 코너 북스토어’에 들를 일이다. 경치 좋은 모퉁이에 자리잡은 이 책방은 여행에 관한 책이 3만권, 지도만 2만개를 소장한 전문점이다.

한편 브래틀 스트릿은 산보하기에도 좋다. 하바드 스퀘어에서 서쪽으로 몇블락 가면 작년에 하바드에 완전히 통합된 래드클리프 칼리지가 자리잡은 래드클리프 야드를 오른쪽으로 끼고 가게 된다. 이곳에서는 콩크리트 보도로 둘러싸여진 조그만 잔디밭에 벤치 몇 개가 눈에 띄는 조용한 마당이 보인다.

조금 더 걸어가면 왼쪽으로 유명한 노란색의 롱펠로 하우스가 나타난다. 롱펠로가 45년동안 살면서 자신의 가장 유명한 시를 쓰고 전세계에서 오는 방문객을 맞이하던 집인데 집과 그 뒷마당은 수리중이라 2002년까지 들여다볼 수 없다. 브래틀 스트릿을 건너 조금 더 내려가면 나오는 롱펠로 공원에 가보면 조그만 롱펠로 기념비도 있다. 이곳에서부터 찰스 강과 메모리얼 드라이브를 따라 가보면 나오는 JFK 공원도 책 읽고 사람 구경하고 피크닉, 일광욕에 좋은 곳이다.

또 책 생각이 나면 JFK 스트릿과 마운트 오번 스트릿 쪽으로 올라가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셴호프 포린 북스’가 나타난다. 프루스트 작품을 불어 원문으로, ‘일리아드’를 그리스어 원문으로 읽고 싶으면 들러야할 곳이다. 지하층이지만 밝은 조명 아래 질서정연하게 수백가지 언어와 방언으로 된 책을 구비해놓은 이 서점에서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직원들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거기서 두 블락 떨어진 곳에 있는 ‘스타 북 샵’은 겉으로 보기에도 조그맣고 안에 들어가봐도 조그맣지만 만일 하바드대학이 창립된 1636년에 책방이 있었다면 바로 그런 모습이었을 중고 서점이다. 1층에는 몇사람만 서있어도 비좁으므로 책을 고르려면 아예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 현명하다. 닳아빠진 모자익 타일 바닥에 책 아니면 포도주 상자였을 자재로 만든 서가에는 좋은 책도 많다.

다시 북쪽으로 하바드를 향하가면 유명한 ‘그롤리어 포에트리 북 샵’이 나온다. 단 404 스퀘어피트에 불과한 이 서점은 1927년부터 문학계에 확실히 자리잡아 왔다. 그롤리어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1932년부터 이웃에 자리잡은 ‘하바드 북 스토어’가 나온다. 길 건너 대학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 개인 소유 책방은 돌집으로 천장이 높고 밝고 넓직해 사람들의 통행이 아주 많다. 요즘 체인 스토어에 나온 인기 서적들도 모두 구비하고 있지만 비즈니스와 학문 연구 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한다.

이제 하바드대학 안으로 들어가면 타이태닉 호에 탔다가 죽은 책벌레 해리 엘킨스 와이드너의 이름을 딴 와이드너 도서관이 나온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서관이자 세계 최대의 대학 도서관인 이곳에는 총 50마일 길이의 서가에 300만권이 넘는 책이 꽂혀 있다. 학생증이 없이는 들어갈 수도 없는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넓고 얕으막한 계단에서 어슬렁거리며 유리창 너머로 새 책들을 훔쳐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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