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영화
▶ ‘슬픔과 연민’ (The Sorrow and the Pity)
우디 앨런의 오스카 수상작인 로맨틱 코미디 ‘애니 홀’(77)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애니: 자 이제 당신 뭐 하고파요?
앨비: 모르겠네. 영화 하나 더 보고파? 우리 ‘슬픔과 연민’ 보러 가지.
애니: 아이 그러지 마세요. 당신 그거 봤잖아요. 나 지금 나치에 관한 4시간짜리 기록영화 볼 기분이 아니에요.
애니가 안 보겠다고 투정을 부리던 프랑스 기록영화의 거장 마르셀 오펄스(72)의 1971년도 흑백 다큐멘터리 ‘슬픔과 연민’이 이번에 원본(프랑스어 대사) 그대로 재상영된다. 상영시간은 4시간20분.
우디 앨런이 제공하고 마일스톤 필름(Milestone Films)이 배급한 이 기록영화는 ‘점령하의 프랑스 도시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나치 점령하 프랑스 시민들의 적에의 동조와 저항과 방관을 분석하고 또 그것이 어떻게 지금까지 프랑스를 끈질기게 사로잡고 있는가를 깊이 파고 든 걸작이다.
이 영화야말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재정의 한 영화로 오펄스는 주제를 주관적으로 흥미진진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뤄 기록영화를 예술의 형태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뷰 대상들과의 한담식 대화와 뉴스필름을 교차해가며 보여주는데 1차대전과 베르사유 조약 그리고 1968년 프랑스 학생시위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시간대를 다루고 있다.
제1부 ‘붕괴’(The Collapse·127분) 그리고 제2부 ‘선택’(The Choice·133분)으로 구분된 이 작품은 어떻게 군비면으로나 정신적으로 열세인 프랑스가 나치를 대항해 싸웠으며 왜 어떤 사람들은 나치 동조자가 됐고 또 어떤 사람들은 레지스탕스 대원이 됐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나치 점령하 프랑스 시민들은 일부는 레지스탕스 대원이 됐으나 나머지 많은 사람들은 나치에 동조, 유대인을 핍박하거나 홀로코스트를 방관했는데 프랑스는 비시에 괴뢰정권 페탕 정부까지 세우고 나치에 동조했었다.
오펄스는 역사와 인류학과 심리학과 사회학을 종합해 진실의 뿌리까지 파고드는데(판단은 관객이 하도록 맡겼다) 귀족과 농부와 가게 주인과 정치인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 나치 점령하 프랑스라는 나라의 정신상태를 집중적으로 재점검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레지스탕스의 신화도 깨어지고 있는데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부적합한 사람들이었다고 한 전 레지스탕스 대원은 주장했다.
마르셀 오펄스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명감독인 막스 오펄스(‘라 롱드’ ‘모르는 여인의 편지’)의 아들로 오펄스 가족은 30년대 프랑스로 도주, 프랑스 시민권을 땄다. ‘슬픔과 연민’은 비디오로도 나와 있으며 13일까지 리전트 쇼케이스(614 N. 라브레아. 323-934-2944)에서 상영한다. 필견의 작품이다.
<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