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요금 체계 때문에 기업 경쟁력이 약화하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뭘까. 우선 연료비 연동제를 원칙대로 작동시키면서, 요금 변동의 범위와 주기를 사전에 명확히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예컨대 국제 유가나 천연가스 가격이 10% 오르면 요금에 3~5%를 반영한다는 식의 투명한 규칙을 세우면 기업들은 에너지 절약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최근 정부가 시간대별 요금제를 일부 도입했지만, 아직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아울러 시간대별·용도별로 세분화된 요금제, 효율 투자와 수요 관리에 적극 참여한 기업에 대한 즉각적인 인센티브 제공 등 미시적 제도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에너지를 아끼고 설비를 고도화하면 전기요금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경험이 쌓일 때에만 비로소 기업의 행동도 바뀐다. 유럽 국가들처럼 에너지 효율 인증 기업에 요금 크레디트를 주는 사례를 벤치마킹할 만하다.
가장 전향적 변화가 ‘지역별 차등 요금제’ 도입 논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에서나 같은 전기요금을 적용하는 단일요금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발전원가, 송배전 비용, 전력자급률은 지역마다 큰 차이가 난다. 더 멀리, 더 복잡한 경로로 전기를 보내야 하는 지역과 발전소가 인근에 있어 공급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지역이 같은 요금을 내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지역별 차등 요금제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열쇠다. 첫째, 에너지 다소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발전소 인근으로 이전하도록 유도해 실질적 지역 균형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전기요금이 ‘공장 입지 신호’ 역할을 하면서 인구와 산업이 수도권에만 몰리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둘째,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 수요를 분산시켜 막대한 송전망 확충 비용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결국 해법의 출발점은 정교한 전기요금 체계다. 전기요금이 더 이상 선거와 여론에 따라 출렁이는 정치 변수나, 특정 계층의 부담을 다른 쪽으로 떠넘기는 분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원가와 시장 원리에 기반해 투명하게 결정되는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여기에 연료비 연동제를 엄격히 적용해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를 때는 절약 신호를, 내릴 때는 숨 고르기 기회를 주는 정상적인 가격 신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에너지는 우리 산업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쉬지 않고 돌리는 연료이자 피와 같다. 지금 대한민국 제조업의 엔진에는 과부하를 알리는 적색 경고등이 분명히 켜져 있다. 전기요금 체계의 근본적 개편은 이 엔진의 결함을 찾아 수리하고, 다시 안정적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시스템 전반을 재설계하는 작업이다. 그래야 수소환원제철, 전기가열로 등이 국내에 뿌리내릴 수 있다.
제조업 현장의 비명을 더 이상 일시적 통증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국가 산업의 미래를 바라보는 결단이 필요하다. 정교한 요금 설계, 합리적이고 공정한 부담, 전력자급률과 발전원가를 반영한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을 통해 우리 산업이 다시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한국 제조업의 생존을 가를 마지막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