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프타값 93% 급등·재고 2주…LG화학, 여수 2공장 가동 중단
▶ 공급망 불안 확산에 물가도 우려… “소비 절감·공급망 대응 필요”

(여수=연합뉴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9일 전남 여수시 석유화학단지 공장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3.9
중동 지역 전쟁 여파로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나프타(납사) 공급이 흔들리면서 에틸렌 생산 차질이 본격화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체들이 '공급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거나 검토하는 데 이어 생산 중단을 결정하면서 자동차·조선·건설·전자 등 전방 산업 전반으로 영향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 나프타 쇼크에 '불가항력' 확산하나…석화 재고 2주 한계
23일(이하 한국시간) 업계에 따르면 중동 지역 정세 불안과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로 나프타 수급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에틸렌 생산이 위축되고 있다. 에틸렌은 플라스틱과 합성수지, 합성고무 등 대부분 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은 원료 확보 부담이 커지자 일부 제품에 대해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하거나 불가항력 가능성을 사전 통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현재 차질 없이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은 약 2주 정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대로라면 이르면 이번 달 말, 늦어도 다음 달 초부터는 가동률 추가 하락과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 이날부터 나프타 공급이 원활해질 때까지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 80만t인 전남 여수 2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여천NCC도 NCC 가동률이 떨어지자 생산량을 조정하기 위해 올레핀 전환 공정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은 생산시설 가동을 멈추는 대정비 작업을 예정보다 3주 앞당기기로 했다.
나프타 거래 가격은 이란 사태 발발 전인 지난달 27일 t당 633달러에서 지난 20일 약 93% 급등한 1천141달러를 기록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나프타 가격, 운임, 국내 도착 시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스팟 물량 구매를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 나프타 가격이 급등한 상황이라 물량 확보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 車·건설·조선·가전까지 확산…전방 산업 전반 '경고등'
에틸렌 공급 차질은 자동차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에틸렌을 중합해 만든 다양한 플라스틱과 합성고무(폴리머)는 자동차 산업의 핵심 소재다. 차량의 경량화, 연비 향상, 소음 감소를 위해 내외장재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외장재에서는 차문이나 창문 틈새에 들어가는 검은색 고무 패킹인 '웨더스트립', 차체 하부 커버 및 흙받기, 범퍼 내부 구조물 등 외부의 충격과 기후 변화를 견디는 부품에 쓰인다.
내장재 역시 대시보드(크래시 패드), 도어 트림, 차음·흡음재, 시트 커버, 안전벨트 등 대부분 부품에 적용된다.
이외에도 엔진룸 내부 호스, 워셔액 통, 냉각수 보조 탱크 등 주요 부품에 에틸렌 기반 소재가 사용된다.
국내 자동차 및 부품 생산 업계는 현재까지는 에틸렌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은 없다면서도 향후 수급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 에틸렌 재고량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지만, 수급 불안이 한 달 이상 길어질 경우 전반적인 생산 계획 조정이 필요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타이어 업계 관계자는 "계약된 원재료 업체 측에서 아직 재고 등에 문제가 없다고 전달받았다"면서도 "중장기적인 수급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보고 모니터링 중"이라고 전했다.
플라스틱과 에틸렌 등을 원료로 한 자재를 대거 사용하는 건설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건축물에 설치되는 배관과 창호 등 주요 자재는 폴리염화비닐(PVC) 등 석유화학 제품을 원료로 만들어지며, 스티로폼과 같은 단열재 역시 에틸렌을 주요 원료로 사용한다.
이에 따라 석유화학 제품 수급난이 발생할 경우 건축자재 수급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창호의 경우 상반기까지는 조달에 문제가 없지만 지금 상황이 하반기까지 이어지면 수급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며 "추이를 계속 지켜보면서 장기화에 따른 영향 등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선박 철판을 가공하거나 절단할 때 에틸렌을 활용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의 에틸렌 재고는 지난주를 기준으로 이르면 1주, 길게는 1개월 안에 소진될 수 있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지난 15일 화학협회와 조선협회 간 화상 협의를 주선해 에틸렌 단기 물량 공급 방안을 마련하면서 단기적인 수급 불안은 해소된 상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긴급 물량을 확보하는 한편 정부와 협의해 추가 물량을 받아 생산 일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업계 역시 영향권에 들어섰다.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가전제품 외장에는 ABS, 폴리프로필렌(PP) 등 석유화학 기반 소재가 사용되는데, 에틸렌 공급이 줄어들 경우 원가 상승과 납기 지연 가능성이 동시에 제기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재고로 대응 가능한 수준이지만 상황이 장기화하면 소재 단가 상승과 생산 일정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요소수 대란' 가능성은 낮아…비료 수급·물가 변수 부상
한편 중동 사태로 '제2의 요소수 대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와 업계는 재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차량용 요소수의 경우 중동산 요소 의존도가 낮기 때문이다.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차량용 요소의 중동 수입 비중은 약 5%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와 석유화학업계는 지난주 요소수 수급 관련 회의를 열고 대응 상황을 점검했으며, 이번 주도 정부 주관으로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현재 국내 요소수 재고는 약 100일치 수준으로 파악된다.
요소수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용 요소수는 고순도 제품이 필요해 중동산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며 "요소수 대란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료용 요소는 중동 의존도가 높아 변수로 꼽힌다.
비료용 요소의 경우 중동산 수입 비중이 약 40%를 웃도는 수준으로, 국제 가격도 최근 한 달 새 약 50% 상승했다.
현재 국내 비료 재고는 5월, 원자재는 6월까지 사용 가능한 수준이지만 이후에는 수급 불안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료 가격 상승은 농산물 가격으로 이어질 수 있어 물가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현재 재고와 대체 수입선을 통해 단기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중동 의존도가 높은 구조상 장기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전쟁 국면이 장기화하며 나프타 등 원료 수급에 어려움이 있지만, 중동 외 지역 원료 확보 및 공장 가동 효율화를 통해 국내 수급 안정화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원자재 수급 문제가 아닌 '국가 기간산업과 공급망 안정'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수급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산업 전반의 생산 차질이 현실화할 수 있는 만큼 소비 절감과 공급망 대응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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