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깡촌’ 초등교 동문들 생애 첫 ‘미국 나들이’

2026-02-13 (금) 12:00:00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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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 어은초등 출신 3명
▶ 졸업생 백상진박사 초청

▶ 10일 동안의 ‘감사 여행’
▶ 아주관광·항공사도 지원

‘깡촌’ 초등교 동문들 생애 첫 ‘미국 나들이’

현대병 연구가 백상진 박사(오른쪽)의 초청으로 생애 첫 미국을 방문한 어은 초등학교 동문들.

한 학년에 한 반뿐이던 충남 태안군 태안읍 어은리의 작은 시골 초등학교. 바다와 논밭 사이에 자리했던 이 학교 졸업생의 조용한 선행이, 태평양을 건너 한인사회에 따뜻한 미담을 전하고 있다.

바다 물고기들이 산란을 위해 육지와 맞닿은 늪으로 숨어든다 하여 ‘고기 어(魚)’ 자와 ‘숨을 은(隱)’ 자, 마을 ‘리(里)’ 자를 따 이름 붙여진 어은리에 소재한 ‘어은 국민학교’는 1947년 태안 공립국민학교 어은분실로 출발해 1960년 독립 학교로 승격됐고, 학령인구 감소로 2004년 문을 닫았다.

학교는 사라졌지만, 추억과 인연은 사라지지 않았다. 현재 옛 교정은 유럽식 가구를 판매하는 엔틱 카페로 다시 태어나, 졸업생들이 매년 모여 웃고 안부를 나누는 기억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이 학교 8회 졸업생인 현대병 연구가 백상진 박사는 최근 모교 동문 3명을 미국으로 초청해 10일간의 무료 여행을 선물했다. 항공권부터 숙식, 관광 일정까지 전액을 본인이 부담한 초청이었다.

초청의 주인공은 ‘전교에서 가장 예뻤다’는 3회 졸업생 백경희(75)씨와 백 박사의 동기이자 평생의 친구 이영래(71)씨, 그리고 유난히도 백 박사를 잘 따르던 10회 졸업생 백경선(69)씨. 모두 ‘깡촌’ 학교에서 자라 성실한 삶을 일궈온 이들이며, 이번 여행이 생애 첫 미국 방문이었다.

여정은 LA 다운타운과 태평양 해안에서 시작해 말리부와 페퍼다인대 캠퍼스, 한인타운 주요 명소를 거쳐 그랜드캐년·브라이스캐년·자이언캐년·엔탤롭캐년의 장엄한 대자연과 라스베가스까지 이어졌다. 백 박사의 안내로 찾은 UCLA 캠퍼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맞이한 새벽 일출, 샌디에고 해변의 석양과 다나포인트 항구에서의 보트 체험은 동문들의 삶에 오래도록 남을 장면이 됐다.

이 소식에 감동한 아주관광(대표 박평식)은 4대 캐년·라스베가스 일정을 특가로 제공했고, 항공사 역시 좌석 업그레이드로 화답했다. 한 사람의 진심 어린 선의가 또 다른 선의를 불러온 순간이었다.

태안군을 통틀어 첫 미국 유학생이었다는 백상진 박사는 “가난했던 시절, 함께 배우고 웃던 선후배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며 “이번 여행은 그 시절에 대한 보답이자 감사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백경희씨 등 동문들 역시 “서울의 이름난 명문학교를 나온 것보다, 백 박사와 같은 동문을 둔 시골학교 졸업생이라는 사실이 더 큰 축복임을 알게 됐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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