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해 아이들이 가장 많이 흔들린 순간들은

2025-12-29 (월) 12:00:00 세라 박 글로벌리더십 중·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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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아이들이 가장 많이 흔들린 순간들은

세라 박 글로벌리더십 중·고등학교 교장

학기말이 되면 학부모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성적표로 향한다. 한 해 동안 아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보면, 연말은 성적을 평가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어떤 상태로 한 해를 버텨왔는지를 살펴볼 좋은 시점이다.

한 해 동안 아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흔들렸다. 속으로는 ‘부족한 자신’에 대해 탓을 하고 절망 하는 시간이 어른들이 생각 하는 것 보다 훨씬 많다. 겉으로는 별일 없이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방향을 잃고 있었다. 이 흔들림의 신호를 읽어내지 못하면, 새해에도 또 다시 비슷한 이유들로 절망하고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 “열심히는 하는데 잘 안되요”라는 의미


올해 상담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학생들의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열심히는 하는데 잘 안되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 말은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의 변명이 아니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은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 아이들의 고백이다. 문제는 노력의 양이 아니라 지금 학교에서 하고 있는 공부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학원, 과제, 시험 준비는 이어지지만, 왜 이 방식으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점점 희미 해진다. 이때 아이들은 실패를 방법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특히 불안은 비교에서 시작된다. 또래의 성취, SNS 속 결과, 부모의 걱정 어린 질문은 아이의 기준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 결과 잘하고 있어도 불안하고, 조금만 흔들려도 크게 무너진다. 성적이 괜찮은데도 지쳐 있는 아이들이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성적과 회복력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보면 성적과 아이의 회복력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성적은 유지되거나 높지만 표정이 사라진 아이들이 있다. 질문이 줄고, 공부를 설명하지 않으며, 그저 버티듯 따라간다. 이 상태가 길어지면 작은 실패에도 크게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성적은 떨어졌지만, “이제 왜 안 됐는지 알겠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 아이들은 실패를 통해 자신의 방식과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경우다. 교육적으로 보면 후자의 상태가 훨씬 건강하다. 성적은 일시적으로 하락할 수 있지만, 자기 이해가 시작된 아이는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연말에 부모가 꼭 점검해야 할 질문은 세 가지다. 첫째, 아이가 지금 지쳐 있는지 이다. 짜증과 회피가 잦다면 실력보다 회복이 우선이다. 둘째, 목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설명할 언어가 없는 것은 아닌지 이다. 아이가 자신의 어려움을 말로 풀지 못한다면 의지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다. 셋째, 비교가 습관이 되었는지 이다. 자기 기준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어떤 성취도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다.

■ 계획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공부의 정리’이다

이맘때가 되면 새해 계획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바빠진다. 그러나 계획이 매년 무너지는 이유는 계획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리가 없는 상태에서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작년과 같은 방식, 같은 실패 요인이 정리되지 않은 채 달력만 바뀌면 결과가 달라지기 어렵다.

연말에 아이에게 꼭 던져야 할 회고 질문은 세 가지다. 첫째, 올해 가장 힘들었던 과목과 그 이유이다. 핵심은 과목이 아니라 이유를 말로 설명해 보는 경험이다. 둘째, 잘 되었던 공부 방식이다. 짧게 했을 때 집중이 되었는지, 말로 설명했을 때 이해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순간, 아이는 자신을 ‘공부를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게 된다. 셋째, 나에게 맞지 않았던 방식이다. 이는 실패를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줄이는 과정이다. 이러한 회고는 새해 계획의 기초가 된다. 계획이란 새로운 다짐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조건을 정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323)938-0300

글로벌리더십 중·고등학교 교장

<세라 박 글로벌리더십 중·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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