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하는 이를 그리며

2025-12-29 (월) 12:00:00 마리 김 아이보리우드 에듀케이션 대표
크게 작게
사랑하는 이를 그리며

마리 김 아이보리우드 에듀케이션 대표

그는 이미 9세에 체스 그랜드 마스터 히카루 나카무라의 지도를 받던, 미국 최상위권 체스 선수였습니다. 성인이 글을 술술 읽어 내려가듯, 어린 나이에도 능숙하게 세 수 앞을 내다보며 냉정하게 퀸을 희생해 체크메이트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체스판 밖의 세상에서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다음 수가 무엇인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지원서에 적힌 “생명공학 및 의학 연구 인턴십에 참여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이며, 그것이 지원자의 STEM 분야 미래 목표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습니까?”라는 직관적인 질문 앞에서도 존(가명)은 한동안 답을 적지 못한 채 앉아만 있었으니까요.

존은 선뜻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팬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출신인 부친의 바람도 한몫했습니다. 존의 아버지는 그가 자신의 뒤를 이어 비즈니스나 금융업에 종사하기를 바랬습니다. 존 또한 뉴욕에서 자란 만큼 돈의 가치와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닌 학교는 다수의 아이비리그 합격생을 배출하는 최고의 명문 기숙학교였지만, 방학 때마다 값비싼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하면 가난한 부류로 여겨지기도 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존의 아버지는 저에게도 그가 경제학을 전공하길 원한다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지원서 질문에 존이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아이가 대부분의 또래처럼 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돈에 집착하는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존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영향력 있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 했지만,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존은 지원한 프로그램에 불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먼저, 가장 담담하게 받아들인 사람 역시 바로 존 자신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 자신마저도 왜 그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학 인턴십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맛본지 1년이 지난 2025년, 존은 마침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동안 그토록 실체를 알 수 없었던 목적의식을 끝내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존의 어머니는 지난달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는 주말 가족 초청 행사(Family Weekend)였어요. 엄마는 그때 너무 쇠약해져서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학교까지 오기 어려웠어요. 대신 제 친구 아버지가 저를 학교와 부모님 집의 중간 지점에 있는 이모네 집까지 태워다 주셨어요. 이모네는 부모님 집과 2시간 거리라, 그나마 절충안이 된 셈이죠. 그곳에서 휠체어에 앉아있던 엄마를 본 게 마지막이었어요.”

우리는 때때로,삶의 일부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존 역시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어머니처럼 아픈 사람을 돕고 싶다는 의사의 꿈을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게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문의 (213)999-5416

mkim@ivorywood.com

<마리 김 아이보리우드 에듀케이션 대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