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3시간 지났는데도…하늘엔 검은 연기, 창문선 벌건 불꽃

2025-11-27 (목) 12: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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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역사상 최악의 화재”…직접 찾은 현장은 ‘참혹’

▶ 몰려드는 구호품·봉사자… “이재민들 너무 힘들어 울기만, 도움 줘야”

33시간 지났는데도…하늘엔 검은 연기, 창문선 벌건 불꽃

27일(현지시간) 오후 11시 15분께 홍콩 북부 타이포의 고층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화재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로이터]

홍콩 현지시간 27일 자정 무렵. 타이포 구역의 고층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는 화재 발생 33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불에 타고 있었다.

건물을 통째로 집어삼켰던 불기둥은 사라졌지만, 일부 동에서는 깨진 창문 사이로 벌건 불길이 여전히 고개를 내밀었다. 잔불이 토해내는 검은 연기는 밤하늘을 뒤덮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매캐함이 짙어지며 눈이 따갑고 머리가 아파왔다.

아파트 건물은 폐허 그 자체였다. 몇몇 동은 3∼4개 층이 시커멓게 전소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작년부터 해왔다는 리모델링 공사의 흔적인 듯 타다 만 스티로폼이 외벽에 들러붙었고, 화재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된 대나무 비계는 꺾이거나 휘어져 있었다.


소방 당국의 살수차는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물줄기를 뿜어댔다. 성한 곳 없는 아파트의 창문과 창문 사이로 실종자를 찾는 듯한 손전등 빛이 이따금 보였다.

화재 현장에서 몇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는 인근 주민들이 화재 진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구모(61)씨는 "어제 오후에 길을 가다가 불이 난 걸 봤다. 불이 아래부터 순식간에 위까지 타고 올라갔다. 홍콩 역사상 최악의 화재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주민 리차오(48)씨도 "매일 출근하면서 웡 푹 코트를 지나간다"라며 "작년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한 걸로 아는데 그것 때문에 화재가 빨리 번지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화재 현장과 가까운 전철역과 광장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몰렸다. 홍콩 각지에서 온 봉사자들은 택시나 차량으로 실어 온 구호 물품을 이재민들에게 나눠주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식수부터 음료, 과일, 의류, 세면도구, 핫팩, 보조배터리, 신발, 베개, 이불 등 다양한 물품이 차곡차곡 분류된 채 공간을 채웠다.

자원봉사자 팡모(32)씨는 "인터넷에서 화재 소식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퇴근하고 봉사하러 왔다"라며 "이런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물품 나르는 걸 도왔다"라고 했다.

인근 지하철역에서 일한다는 왕모(25)씨도 "화재가 발생하고 홍콩 여러 지역에서 구호 물품이 왔다"라며 "역에서 일하다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나와서 안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화재는 아파트 단지 8개 동 중 7개 동에서 발생했다. 전날 오후 10시 40분 기준으로 사망자는 75명, 부상자는 76명이다. 이날 새벽 기준으로 아파트에 거주하던 주민 279명은 행방불명 상태다.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인근 광장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세시(24)씨는 "화재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왔다"라고 했다.

그는 "아파트 7개 동이 타버렸고 이재민들은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게 됐다. 너무 힘들다고 계속 울기만 하는 사람도 봤는데, 정부가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줬으면 한다"라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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