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불 안가리는 이민단속…유치원 건물도 들어가 교사 체포

2025-11-05 (수) 1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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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포 과정 본 교직원·학부모 ‘경악’…국토안보부 “건물 내부 아니라 ‘현관’서 체포” 반박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전역에서 무차별적으로 불법 이민자 체포 작전을 벌이는 가운데 무장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유치원 건물 안까지 쫓아 들어가 학부모와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사를 잡아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5일 오전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사립 데이케어(어린이집)·프리스쿨(유치원)인 '라이토 데 솔'에서 교사가 체포된 상황을 상세히 전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ICE 요원이 학교 부지로 들어간 최초의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시카고의 비교적 부유한 동네에 위치한 이곳은 스페인어 몰입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중남미 출신 교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목격자와 현장을 촬영한 영상 등에 따르면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한 여성 교사는 이날 오전 한 승용차의 조수석에 앉아 이곳으로 출근 중이었고, 승용차 뒤로 ICE 요원들이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SUV가 뒤따라왔다.

이 교사가 건물 안으로 들어온 후 검은 조끼를 입은 ICE 무장 요원들도 유치원 건물 내 로비로 들어왔다.

붙잡힌 교사는 스페인어로 "(합법적인 체류를 증명하는) 서류를 가지고 있다"고 소리쳤지만, ICE 요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건물 밖으로 이 교사를 끌고 나갔다.

시카고 시의원인 맷 마틴은 학교 관계자들이 해당 교사의 취업 허가증을 포함한 고용 증명서를 제시했으나 ICE가 그를 체포했다고 강조했다.

마틴 의원은 그가 체포된 이후에도 무장한 ICE 요원 1명이 건물 내부에 남아 방마다 돌아다니며 여러 성인에게 질문했으며 이 과정에서 영장을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교사의 체포 과정은 아이들도 볼 수밖에 없었고 학부모와 교직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황급히 아이들을 데리고 건물 밖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한 교사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주차장으로 나와 동료와 세 살배기 학생과 함께 30분간 차량에 숨어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곳에 자녀를 보내는 타라 구다르지는 교사의 아이를 등원시키다 교사의 체포 직후 혼돈에 빠진 유치원의 모습을 목격했다며 "아이들, 선생님, 학부모가 방에서 모두 울고 있었다"고 말했다.

WP는 이전에는 학교가 '민감 장소'로 분류돼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공권력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됐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월 이 정책을 폐지해 ICE 직원이 학교, 교회, 병원에서 이민 단속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교내 체포 사례는 거의 없었다. 국토안보부도 학교를 표적으로 삼을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트리샤 맥러플린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해당 여성이 "현관"에서 체포됐다며 ICE 요원의 유치원 내부 진입 사실을 반박했다.

맥러플린 대변인은 ICE 요원들이 이 교사가 탑승한 차량을 세우려고 했지만 운전자는 멈추지 않았으며 체포 당시 이 교사가 자신의 신분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강조했다.

국토안보부의 해명과 달리 유치원 측은 학부모들에게 보낸 알림 공지를 통해 해당 교사가 직장에 도착했을 때 체포됐다며 "ICE 요원들은 사설 사업장이라는 표지판이 있고 어떠한 영장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안으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델리아 라미제르 상원의원(민주·일리노이)도 국토안보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해당 기관과 협력해 당시 내부 상황을 촬영한 감시 카메라 영상 등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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