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국 수출 규제 완화 추진할듯…젠슨황 “원래는 트럼프도 참석 예정이었다”
▶ 공공부문 매출 확대 시사…脫엔비디아 나선 빅테크 대체할 신시장으로 눈독

엔비디아 로고[로이터]
인공지능(AI) 칩 제조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엔비디아는 하반기 개발자행사(GTC) 장소로 실리콘밸리가 아닌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선택했다.
엔비디아는 실리콘밸리 이외에도 시장 상황에 따라 세계 주요 도시에서 GTC를 여러 차례 열어왔지만, 워싱턴에서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I 산업이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미국 정부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과정에서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엔비디아로서는 미국 정부,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유대 강화가 필수적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28일(현지시간) 행사장에서 "원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행사에 참석하려 했으나 이틀 전에 연락해 '한국에 가야 한다'고 했다"고 전하는 등 유대를 과시했다.
◇ 對중국 칩 수출 로비
엔비디아가 워싱턴에서 GTC를 연 배경에는 중국 시장을 되찾고자 하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엔비디아는 이전 세대 아키텍처인 호퍼의 2023년 이후 누적 매출액이 1천억 달러인 반면 블랙웰 이후 아키텍처는 올해 현재까지의 매출액만 5천억 달러가 넘는다고 밝혔는데 이는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 집계한 수치다.
만약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서도 순조롭게 GPU를 판매할 수 있었다면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로이터·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행사가 아시아 순방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개최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투자자들은 엔비디아가 중국에 어떤 칩을 판매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변을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AI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최신 칩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엔비디아는 지난해 대(對)중국 수출 통제 요건에 맞는 저성능 칩 H20을 내놨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4월 이에 대한 수출조차 금지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 과정에서 수출 금지는 3개월 만인 7월에 풀렸지만, 이번에는 중국이 H20 칩에 보안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사실상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반도체 내수 판매를 늘리는 등 기술 자립을 꾀하고 있다.
아직 중국 제품은 가격도 비싸고 전력 소모량도 크게 높아 엔비디아 제품과 직접 경쟁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엔비디아로서는 양국 정부 간 갈등에 끼어 눈 뜨고 시장을 빼앗긴 양상이 된 셈이다.
엔비디아가 지난 3월 처음으로 연방 정부를 상대하는 로비스트를 등록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후속 제품으로 B30을 준비하고 있지만, 중국 수출을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엔비디아는 중국에 칩을 수출하면 안 된다는 강경파들에 맞서 미국산 칩을 중국에 공급해 중국이 미국 기술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미국의 우위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관련 전망은 밝은 편이다. 엔비디아는 7월 수출 금지를 풀면서 중국에 판매하는 AI칩 수익의 15%를 연방 정부에 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이해관계가 일정 부분 일치하게 되면서 신제품 수출 허가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는 게 시장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황 CEO의 관계도 상당히 돈독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범죄 단속을 위해 연방 요원을 대거 투입하려 했다가 이를 철회하면서 "황 CEO와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 연락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 국방·에너지 분야 정부 협력
엔비디아는 이날 행사에서 공공 부문과 인프라와 관련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 발표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와 협력해 자사 GPU를 탑재한 양자 기반 AI 슈퍼컴퓨터 7개를 구축한다고 발표했고, 핀란드 통신장비 기업 노키아와 미국 내 6G 통신망을 설치하는 데도 협력하겠다고 했다.
황 CEO는 국가 역량을 에너지 성장 지원에 투입한 것이 판도를 바꾼 선택이었다며 "트럼프 대통령께 감사드린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의 정책 기조를 따라간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미국 정부가 대주주가 된 미국 반도체 제조사 인텔에 50억 달러를 투자했다.
또 지난 17일에는 최신 AI 칩 '블랙웰'을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TSMC 팹(공장)에서 대량 생산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 CEO는 당시 "가장 중요한 단일 칩이 미국 내 TSMC 팹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역대 처음"이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산업 재편을 위한 비전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애리조나주 TSMC 팹은 조 바이든 행정부 때이던 2022년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초당적으로 추진해 통과된 '칩스법'에 따라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건설된 곳이다.
이번 GTC에는 당시 칩스법 통과를 주도한 토드 영 상원의원(공화당·인디애나주)도 참석해 AI와 생명공학에 대한 대담을 하는 순서도 예정됐다.
◇ 빅테크 고객의 이탈 대비
엔비디아가 이처럼 공공 부문과 관련해 연방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빅테크에서의 매출 감소를 만회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는 AI 칩 부문 시장 점유율 90%을 기록하고 있는 세계 1위 기업이지만, 지금껏 최대 고객이었던 빅테크 기업들은 조금씩 엔비디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엔비디아 칩이 성능은 좋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빅테크들의 현금 동원력이 막대하기는 하지만, GPU 구입량도 엄청나기 때문에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
또 빅테크들은 자신들의 AI 개발 방향에 맞춰 직접 칩을 개발할 능력과 기반을 갖추고 있다.
최고 수준의 성능이 필요한 영역은 엔비디아의 칩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은 자체 칩을 사용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오픈AI만 해도 브로드컴과 자체 칩 개발에 나서는가 하면, 최근에는 엔비디아의 경쟁사인 AMD와 6기가와트(GW) 전력량 규모의 AI 칩 공급 계약을 맺었다.
클라우드 업체 오라클이 AMD에서 AI칩 5만 개를 도입한다고 지난 15일 발표하자 엔비디아 주가가 당시 3%대 하락을 기록하기도 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앤스로픽 등 다른 빅테크들도 저마다 자체 칩을 준비하거나, 엔비디아 일변도에서 벗어나 공급망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공공 부문 매출 증가에 신경쓰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공 부문은 자체 칩을 개발할 여력이 없고 특히 국방이나 에너지 등 안보 관련 영역은 비싸더라도 최고 수준의 칩을 사용해야 할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