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동 ‘강자 인증’ 이스라엘, 위기 몰린 이란

2025-06-22 (일) 09: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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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아랍국은 원론적 입장 내며 ‘몸사리기’…사우디 역할론도 의문

미국의 이란 핵시설을 22일(이란 현지시간) 전격 폭격하면서 중동 역학의 추가 이스라엘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 공습하면서 기선을 제압했으나 공습 공방이 열흘째 이어지면서 이스라엘에서도 서서히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하던 차에 미국이 급작스럽게 군사 개입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동에서 '이론적'으로만 언급됐을 뿐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여겨지던 이란 본토 공격과 핵시설 폭격이라는 '레드라인' 2개를 한꺼번에 넘었다.


미국 역사상 첫 이란 본토 공습의 최대 수혜자는 물론 이스라엘이다.

1948년 건국 이후 이스라엘이 지금처럼 주변 아랍권과 이란을 상대로 군사, 외교적 우위를 차지한 적은 처음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이란은 레바논, 가자지구, 시리아, 이라크, 예멘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저항의 축'을 구축, 이스라엘을 고립시켜 압박했으나 지금은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당시 이란의 위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걸프의 수니 아랍권이 오히려 이스라엘과 이란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경계해야 할 정도였다. 2016년 1월 사우디와 이란의 단교가 단적인 사례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같은 이란의 확장기에 2015년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타결해 이란의 전성기가 시작됐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런 흐름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당선으로 급제동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더 강화했다. 이후 닥친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란의 경제 체력을 급격히 약화했다.

이란의 경제력 약화는 저항의 축에 대한 지원 축소로 이어졌으며 그사이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걸프 아랍권과 역사적으로 수교(아브라함 협정)하며 중동 내 활동 반경을 넓혔다.


2023년 10월 가자 전쟁이 일어나자 이스라엘은 큰 그림을 그렸다. 가자지구 하마스를 상대로 한 기존의 국지전이 아니라 그 배후로 지목한 이란을 직접 노린 것이다. 이들에게 가자 전쟁은 결과적으로 건국 이후 77년간 상존했던 안보 위협에서 벗어날 기회가 됐다.

이런 설계는 질적군사적우위(QME)로 쌓아온 군사력과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그리고 시리아의 친이란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라는 외부 환경이 맞아떨어지면서 실현됐다.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국보다 비록 영토가 작고 인구도 적지만 첨단 무기체계, 정보 수집력 등에서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개념인 QME는 미국이 196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지원해 온 원칙이다. 중동 유일의 F-35 전투기, 강력한 방공망 등이 QME의 원칙하에 보유할 수 있었던 군 전력이다.

주변 아랍국과 4차례 전쟁을 비롯해 이번 이란 본토 공습까지 이스라엘의 QME 효과는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시리아의 정권 교체로 지상군이 강력하고 공군력이 취약한 이란으로선 한 팔을 묶은 채 이스라엘과 싸우는 꼴이 됐다. 중동 내 최강 전력이라고 불렸던 레바논 헤즈볼라의 와해 역시 이스라엘이 이란을 직접 겨냥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던 셈이다.

가자 전쟁, 이란과 무력충돌, 미국의 이란 공습 과정에서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아랍권은 원론적인 '구두 경고와 규탄'에 머물며 인도주의적 우려를 표했을 뿐 직접 이스라엘에 맞서지 않았다. 2년 전부터 개선되긴 했으나 여전한 역사, 종파, 민족, 외교적 이질감은 수니 아랍권이 이란을 적극 옹호하기 어려운 장애물로 보인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걸프국가들은 로키(low-key)로 가면서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에 휘말리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그들에겐 이스라엘의 팽창도 우려스럽지만 핵을 보유한 이란도 허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동 맹주 사우디의 역할론에 대해선 "사우디가 미국에 외교적 해결을 제안할 수는 있겠으나 큰 효과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란은 이번 '중동 전쟁'에서 고립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군사 공격까지 받게 된 이란은 중동 내 영향력이 급속히 약해질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당장 이란은 미국을 상대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수준의 '반강제적 협상'에 동의하든지, 미국과 이스라엘 협공에 따른 손실을 감수하고 북한과 같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는 길을 택하는 방법이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 원자력 발전소 해체 등 핵프로그램을 사실상 폐기하는 핵협상을 맺으면 미국은 이와 직접 관련된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포기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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