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8·15 특별공연 ‘광희’를 앞두고… 무용의 울림, 독립의 함성

2025-06-12 (목) 12:00:00 김응화 미주한국무용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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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독립투사들의 용맹과 희생이 떠오르지만, 일제강점기의 잿빛 무대 뒤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한국 예술을 지켜온 예인(藝人)들이 있었다. 조선 초기에 설립된 궁중 예술기관 ‘장악원(掌樂院)’에서 여성 예인들은 왕실의 음악과 무용을 총괄하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장악원의 기능이 점점 축소되자 궁중 춤은 자연스레 민간으로 퍼져 나갔고, 예인 조합인 ‘권번(券番)’에서 새로운 예술적 꽃을 피워냈다. 권번은 궁중의 전통에 민간의 창의성과 대중성을 더해, 춤과 소리를 한층 다채롭게 발전시켰다.

그러나 대한제국 시기로 접어들며 국정이 혼란에 빠지고 왕실 행사마저 줄어들자, 교방(敎坊)의 권위는 서서히 무너졌고 권번도 흥망성쇠를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 예인들이 추던 춤사위는 결코 끊기지 않았다. 궁중에서 활동하던 무용가들은 민간 무대로 옮겨 계속 춤을 췄고, 민간의 춤꾼들은 전통 춤을 변형하고 확장해 더욱 창의적인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그 덕분에 우리 춤은 역사의 거친 파도에 흔들리면서도 간신히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욱 엄혹해졌다. 일제가 조선인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하면서 공연과 예술 활동을 엄격하게 단속했기 때문이다. 많은 예인들은 무대 밖에서 힘겨운 생계를 이어가야 했지만, 은밀하게 이어진 스승과 제자의 가르침, 그리고 목숨을 건 ‘춤판’ 덕분에 전통춤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온갖 규제와 방해 속에서도 스승은 다음 세대를 위해 춤을 전수했고, 제자는 그것을 지켜내고 발전시키려 애썼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다. 이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전통예술이 단순한 옛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을 지켜온 살아 있는 몸짓이라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스승들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춤을 가르쳤는지, 예인들은 어떻게 민족예술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는지, 권번이 무너져가던 시기에 예술은 어떻게 살아남아 민간과 해외로 퍼져 나가는 지를 곰곰이 돌아보면, 전통춤이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필자는 바로 이 흐름을 기념하기 위해 ‘광희(光喜)’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광복의 기쁨’을 춤으로 표현하는 이 작품 속에는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의 쇠퇴, 일제강점기의 억압을 꿋꿋이 버텨낸 예인들의 영혼과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LA라는 이국땅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관객에게까지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종종 무력 투쟁이나 정치적 사건 중심으로 기록되곤 하지만, 수백년 동안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탱해온 또 하나의 큰 기둥은 바로 전통예술이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는 춤의 역사를 통해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무명 예인들의 투쟁을 되새겨야 한다. 그들 덕분에 오늘날 해외 어디서든 한국 전통춤이 빛을 발할 수 있고, 역사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 직한 채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것이다.

‘광복’은 말 그대로 ‘빛을 다시 찾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진정한 광복은 우리 문화의 빛을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 이 작품은 ‘저항과 부흥’이라는 메시지를 중심에 두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피어난 춤과 음악을 통해, 한국 문화의 회복과 민족적 자긍심을 전하고자 한다.

LA와 같은 다문화 도시에서 한국 전통춤의 ‘한(恨)’과 ‘흥(興)’은 언어를 초월한 보편적인 감동으로 다가간다. 8월16일, ‘광희’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서 이민의 역사 속에서 전통문화를 지켜온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2세들에게 그 기회를 전하고자 이 행사가 될 것이다. 광복 80주년의 뜨거운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고, 춤이 전하는 깊은 감동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응화 미주한국무용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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