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미국에 체류하는 서류미비 이민자들의 숫자가 지난 한 주동안 35만명 가량 늘어났다.
폭력배와 범죄자들이 무더기로 국경을 넘어온 것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없다. 이들의 숫자가 급증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5만명의 합법 이민자를 불법체류자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들어오는 불법입국자들의 “침략”을 경고하며 이들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했다. 백악관 탈환후 그는 “체류신분 서류 취소”를 통해 자신의 몽환을 현실로 만들려 시도했다. 이는 범죄자를 겨냥한 이민 정책이 아니다. 기존 비자와 취업허가를 박탈함으로써 법을 준수해온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둔갑시키는 꼼수다.
지난주 체류신분 관련 서류가 취소된 35만명은 임시보호지위(TPS) 프로그램에 따라 당국으로부터 미국내 거주 및 취업 허가를 받은 베네수엘라인들이다. TPS는 출신국에서 발생한 전쟁이나 기타 재난으로 인해 귀국할 경우 신변안전을 위협받는 이민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990년에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박해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 이들이 사회주의 독재자가 통치하는 베네수엘라로 돌아가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그의 철권통치하에 베네수엘라인들은 만연된 굶주림과 숫한 인도적 위기상황에 시달리고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화당 정치인들은 사회주의 정권의 피해자들에게 미국이 안식처가 되어주길 원했고, 실제로 베네수엘라 난민들을 따듯하게 맞아들였다. 사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연방 상원의원 시절 TPS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유감스럽게도 트럼프에게 (비-백인) 이민자들은 위험스런 존재다. 지난 2월 그는 베네수엘라인들에게 제공된 보호막을 거둬들였고, 연방 대법원은 지난주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이민위원회(AIC)의 수석 연구원인 아론 라이클린-멜닉은 이를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이민불법화 사건”으로 규정했다.
베네수엘라인들은 트럼프의 유일한 타겟이 아니다.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간인 9,000여명의 임시보호지위를 박탈했다. 개인적 위험을 감수해가며 아프간 주둔 미군을 도왔던 이들은 7월에 강제추방당할 위기에 처했다.
크리스티 L. 노엠 국토안보부장관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은 꽤 안전해 보인다며 이같은 결정을 정당화했다. 노엠 장관은 아프가니스탄이 인기있는 휴양지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녀의 국토안보부 메모에는 “탈레반 정부가 글로벌 이미지 쇄신을 위해 관광을 장려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노엠 본인은 칸다하르에서 봄 휴가를 보내기로 결정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아마도 유엔 관리들의 말처럼 탈레반이 다스리는 아프가니스탄이 “지구상에서 여성의 권리를 가장 심하게 억압하는 나라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난해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마크 시쎈과의 대담에서 그랬듯 트럼프는 가끔 합법적 절차에 따른 이민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당국의 사전승인을 받고 미국으로 들어온 쿠바, 아이티, 나카라구아와 베네수엘라인 5,000여명의 법적지위를 박탈해 버렸다. 이들은 입국당시 미국인 후원자까지 확보한 상태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실시한 프로그램은 이민 희망자들이 사전예고 없이 국경으로 쇄도하는 대신 해외에 있는 동안 엄격한 신원조회를 받고 입국신청을 하도록 제도화한 조치였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국경지역에 가해지는 압력을 성공적으로 감소시켰다. 그러나 이처럼 합법적 절차를 거친 이민자들조차 보호받지 못했다.
동일한 패턴은 오스틴 코처 시라쿠제대 교수가 수집한 정부 데이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민자 수용소에 억류된 범죄 전과자의 수는 트럼프 집권 이전에 비해 1.5배 늘어난 반면 전과기록이나 범죄혐의가 전혀 없는 구금자의 수는 거의 9배나 증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과기록이 없는데도 체포된 이민자들은 공공안전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단속 도중 우연히 근처에 있다가 걸려든 “우발적 피해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부 당국은 정기적인 이민신분 확인이나 시민권 인터뷰에 참석하려는 이민자들을 체포하고 있다. 범죄기록이 전혀 없는 브롱크스 지역의 고등학생은 지난주 이민국 관리와의 정기적인 면담을 위해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가 건물 입구에서 단속요원들에 의해 체포됐다.
안타깝게도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은 낮은 가지에 달린 과일이다. 그만큼 손에 넣기 쉽다는 뜻이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고 몸을 숨긴 이민자들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이민국 단속요원들에게는 체포 건수가 할당된다.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자발적으로 거주지를 밝히고 꼬박꼬박 담당관과의 면담에 출석하는 이민자들을 “가로채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트럼프는 국경에서 “일단 구금후 풀어준” 월경자들은 지정된 심리 기일에 출석하는 대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물론 트럼프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자신의 환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 카토 인스티튜트의 이민 연구원인 데이비드 바이어는 “이민단속 요원들의 도를 넘는 단속행태는 서류미비 체류자들의 규정준수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빌미삼아 더욱 가혹한 조치를 정당화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합법적으로 발급된 비자를 취소하거나 이민자들에게 범죄자의 프레임을 뒤집어 씌우려는 트럼프의 시도 중 일부는 ? 최소한 일시적으로 - 법원에 의해 차단됐다. 수위를 높이는 하버드 대학과의 갈등 훨씬 이전에 행정부 관리들은 전국적으로 수 백건의 학생비자를 취소했지만 법원의 부정적인 결정이 나오자 철회했다. (지난 수요일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국에 체류중인 중국 유학생들의 비자를 전면 취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법원에 의해 차단된 트럼프의 출생시민권 폐지 시도의 목표는 미국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의 시민권을 박탈해 추방이 가능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도피한 우크라이나인들과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입국한 젊은 이민자들은 과거 트럼프의 행적으로 보아 그들이 다음번 표적이 될 수 있다며 두려워한다.
트럼프는 불법이민만을 단속한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으로, 지금까지의 추세를 고려하면 숫한 불법이민자를 만들어낸 트럼프야말로 수 십년래 불법 이민에 가장 우호적인 대통령인지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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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람펠 /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