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 5천억달러 절감 효자 프로그램
▶ 에너지스타 제품 시장 점유율 높아
▶ 고효율 선택에 발품 필요할 듯
▶ ‘에너지가이드’등 프로그램 유지

고효율 가전제품 인증 프로그램 ‘에너지스타’가 폐지될 예정이어서 소비자들이 제품 선택에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한 가전제품 매장에 진열된 제품의 모습. [로이터]
30여 년간 미국 가정의 전기요금을 줄여주고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해온 ‘에너지스타(Energy Star)’ 프로그램이 폐지 위기에 놓였다. 에너지스타는 가정당 연간 약 450달러의 전기요금을 절약해주는 프로그램으로 그동안 소비자들이 가전제품을 고를 때 살펴보는 주요 구매 조건 중 하나다.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스타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연방 환경보호국’(EPA) 대변인은 “기관의 핵심 임무에 집중하고 ‘위대한 미국 재도약’(Powering the Great American Comeback)을 위한 조직 개편의 일환”이라며 폐지 배경을 밝혔다. 프로그램의 일부를 함께 운영하는 연방 에너지국은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 폐지에 적극적인 트럼프 행정부에너지스타 프로그램 폐지 계획 발표 후 가전제품 업계와 정치권에서는 강한 반발이 이어졌다. 주요 가전제품 제조 기업과 업계 협회들은 에너지스타 프로그램 유지를 요청하는 로비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1기 행정부 때도 유사한 폐지 시도가 있었으나 당시에는 의회의 반대로 예산이 유지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엔 양상이 다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도 정부 프로그램과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데 훨씬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 트럼프 행정부는 전구에서부터 샤워기에 이르는 각종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철폐하는 조치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에 혼란EPA에 따르면 에너지스타 프로그램은 지난 수십 년간 누적 약 5,000억달러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는데 기여했고, 약 40억 톤에 달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효율적으로 방지했다.
미국 내 냉장고, 세탁기 등 고효율 가전제품에 붙는 파란색 별표 스티커로 유명한 에너지스타 인증 가전제품은 2021년 한 해에만 3억 개 이상이 판매될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에너지스타 프로그램의 운영비는 연간 약 3,200만달러(약 430억원) 수준으로, 예산 부담도 적은 편이다.
현재 프로그램이 폐지를 앞두고 전문가들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 프로그램이 사라질 경우 소비자들이 효율적인 제품을 고르는 데 혼란이 발생하고 장기적으로 에너지 비용 증가와 탄소 배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제 에너지 효율 비영리단체 CLASP의 크리스틴 이건 대표는 “에너지스타 프로그램은 브랜드 인지도와 소비자 신뢰를 갖고 있다”며 “에너지스타 마크가 부착된 제품은 ‘에너지 사용을 줄여 전기요금을 절감할 수 있다’는 객관적인 신뢰를 준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에너지스타 인증 프로그램이 사라지면 소비자들은 고효율 가전제품을 고르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전망이다.
■ 에너지 스타 제품 점유율 높아에너지스타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은 복잡한 기준 대신 하나의 별표가 달린 파란 마크로 소비자들이 해당 제품의 효율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에너지스타 마크가 붙은 제품은 해당 제품군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인정받는 제품으로, 연방 최소 에너지 효율 기준을 평균 10~75% 이상 상회한다. 에너지 효율 기준은 외부 기관을 통해 엄격히 검증되기 때문에 과거 프로그램 초기 있었던 일부 허위 인증 우려가 없다.
에너지스타 프로그램은 의무 제도가 아닌 기업의 자발적 참여와 인센티브 기반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해외에서도 모범적인 프로그램으로 인정받는다. 소비자들은 에너지스타 마크가 부착된 가전제품을 구매하면 장기적으로 전기요금을 절감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갖고 있다. 주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전력회사는 에너지스타 제품 구매 시 환급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제공해 수요를 촉진한 바 있다.
가전제품 제조 기업들도 소비자들이 고효율 제품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에너지스타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왔다.
또, EPA는 정기적으로 에너지스타 인증 기준을 상향 조정하며 가전제품 제조 기업의 지속적인 기술 개선을 유도해왔다. 현재 가전제품 시장에서 식기세척기 시장의 96%, 노트북 시장의 71%가 에너지스타 인증을 받은 제품이 차지할 정도로 에너지스타 인증 제품은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 소비자 발품 필요할 듯에너지 전문가들은 에너지스타 프로그램이 폐지되면 소비자들이 고효율 가전제품을 고르는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소비자가 스스로도 가전제품의 효율 정보를 찾으려면 제조사 기술 사양서 관련 자료를 직접 검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게다가 에너지 효율 정보가 일반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적인 용어를 많기 사용하기 때문에 정보를 찾아도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에너지스타 프로그램 폐지 후 연방정부가 기존에 운영 중인 두가지 프로그램이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다. 1987년부터 시행된 ‘연방 최소 효율 기준(Federal Minimum Efficiency Standards)’은 일정 수준 이하의 비효율적인 가전제품이 미국 시장에 출시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프로그램이다.
‘연방거래위원회’(FTC)가 1980년 시작한 ‘에너지가이드(EnergyGuide)’ 라벨 프로그램도 현재 운영 중이다. 제품에 부착된 노란색 스티커를 통해 유사 제품군과 비교했을 때 에너지와 비용을 얼마나 절약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스타에 비해 에너지가이드의 데이터 오래됐고 적용 제품도 매우 제한적인 데다 전체적인 효율 등급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덜 알려져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다만 에너지가이드 라벨이 붙은 전체 제품 중 상위 약 15% 수준의 제품이 이론상 에너지스타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고효율 가전제품을 고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밖에도 소비자들이 가전제품 판매점이나 시공 업체, 설비 기술자에게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 정보를 직접 물어보는 방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