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美국방, 中견제 ‘올인’ 천명…韓국방예산 대폭확대 요구 가능성

2025-05-30 (금)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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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샹그릴라서 인태전략 연설…나토 새 기준 ‘GDP의 5% 국방비’ 강조 주목

▶ ‘안보는 美, 경제는 中’ 접근방법에 경고…남북한 각 1회 언급에 그쳐
▶ 韓, 美의 ‘中올인’이 北위협 경시 초래않도록 대미외교 나서야할듯

美국방, 中견제 ‘올인’ 천명…韓국방예산 대폭확대 요구 가능성

헤그세스 국방장관 [로이터]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31일(현지시간) 아시아안보대화(샹그릴라대화·싱가포르) 연설은 미국 군사 역량 투입의 최우선 순위를 대중국 억제로 설정하면서, 중국 견제에 동참할 한국 포함 인도·태평양 동맹들의 국방비 지출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헤그세스 장관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취임 전의 우려와 달리 '동맹 중시' 기조를 밝혔으나 그 목적은 동맹들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임을 명확히 했다.

그는 특히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지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접근 방식을 추구하지 말 것을 강조해 한국 등 인태 지역 동맹국들의 '균형외교' 가능성을 견제했다.


6·3 대선을 거쳐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할 예정인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더 격화하고 있는 미중 경쟁과 갈등 속에서 적절한 좌표를 설정해야 하는 한국 외교·안보의 숙제를 다시 한번 확인한 형국이었다.

◇ "중국은 아시아 지배하려 해…美, 중국 침략 억제로 방향 재설정 中"

헤그세스 장관은 "미국은 인도-태평양에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어 물러날 수 없다. 우리는 여기 머무르기 위해 왔다"며 직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등으로 인해 유럽과 중동으로 분산됐던 안보 전략을 인태 지역으로 집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헤그세스 장관은 "우리는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침략을 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재설정하고 있다"며 안보 전략 재설정의 목표는 대중국 억제임을 시사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연설 내내 외교적 수사를 배제한 직설화법으로 중국의 위협을 강조했다.

그는 우선 중국이 아시아에서 "지배적 국가"(hegemonic power)가 되고자 하며, 지역을 지배하고 통제하려 한다고 진단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 준비를 마치라고 인민해방군에 지시했으며, 그 지시 이행을 위해 필요한 역량을 급속도로 구축하고 있다고 헤그세스 장관은 지적했다.


또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과 대만을 괴롭히고 있으며, 사이버 역량을 활용해 미국과 다른 나라의 산업 기술을 탈취하고 인프라 시스템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대만을 정복하려는 시도는 인도-태평양과 전 세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중국이 가하는 위협은 현실이며, 임박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와 함께 "우리는 중국과 충돌을 추구하지 않지만 이 중요한 지역에서 밀려나지 않을 것이고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가 (중국에) 종속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인태 동맹국들에 나토 수준인 GDP의 5% 국방비 가이드라인 거론

헤그세스 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의 국방비 지출 확대를 촉구하면서 나토 회원국들의 새 국방비 목표인 '국내총생산(GDP)의 5%'를 거론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우리는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에 자신의 역할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한 뒤 "아시아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유럽 국가들을 새로운 사례로 봐야 한다"며 "독일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들은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 뒤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훨씬 더 강력한 (중국발) 위협에 직면해 (유럽보다) 적은 국방비 지출을 하는 상황에서 유럽이 그렇게(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 증액)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 뒤 헤그세스 장관은 "유럽이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은 자국 방어를 신속하게 업그레이드함으로써 뒤따를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동맹들이 국방예산을 나토의 새 가이드라인(GDP의 5%)에 필적할 정도로 올려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대선을 거쳐 출범할 한국 차기 정부는 현재 GDP의 2.5% 안팎인 국방예산을 배증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의 부담액인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관련해 논의되는 수치와는 '단위'가 다른 사안으로 평가된다.

◇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스탠스에 경고

헤그세스 장관은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면서 경제면에서는 중국과 협력을 중시해온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일부 국가들에 '경고성' 메시지도 던졌다.

그는 "많은 국가가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미국과의 국방 협력을 모두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유혹받고 있음을 알고 있다"며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긴장 또는 갈등의 시기에 중국의 악의적 영향력을 심화시키고 결정 공간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지 말라는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미중 무역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라 더욱 예사롭지 않은 발언으로 평가된다.

◇ 인태지역 미사일방어 강화 예고…'3불' 관련 한중갈등 가능성

헤그세스 장관은 또 중국 견제를 위한 인태지역 방위력 강화의 구체적 조치를 열거하면서 인태 지역의 미사일 방어 개선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지역 통합 방공 및 미사일 방어 구조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MD)에 참여하는 문제와 연결되는 일일 수 있다.

미국이 한국까지 참여하는 동북아 MD망 구축에 나설 경우 중국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재임 중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 봉합을 위해 한국 정부가 밝힌 이른바 '사드 3불'(사드 추가배치 안 하고, 미국 MD·한미일 군사동맹 불참)과 배치된다고 주장하며 한국에 불참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국 정부는 '3불'이 국가 간 합의가 아닌 당시 정부의 입장 표명이었을 뿐이라는 입장이나 중국은 국가 간 합의 내지 약속이라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미중 사이에서 좌표 설정을 고민하게 될 한국 차기 정부로서는 이 같은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망 참여 등에서 쉽지 않은 결단을 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헤그세스 장관은 올해 여름 호주에서 미 육군이 중거리 공격 역량(미사일 등)의 첫 실사격 테스트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외국 영토 안에서 이 같은 테스트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된다고 그는 소개했다.

또한 그는 세계적 수준인 동맹국들의 선박 수리 능력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히며 조선 강국인 한국과의 관련 협력 여지를 시사했다.

또 방위 산업 회복력 강화 및 관련 역량 확대를 목표로 하는 미국 주도의 14개 동맹국 및 파트너 포럼인 '인도-태평양 산업 회복력 파트너십'(PIPIR)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도·태평양에서 P-8 해상 초계기를 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헤그세스 장관은 "호주에서 P-8 레이더 시스템의 수리 능력과 수용 역량을 확립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P-8 해상 초계기를 운용하는 뉴질랜드와 한국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미국 본토의 단일 수리 자원에 의존하지 않고 역내에서 항공기를 수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 견제 방점 찍으며 북한은 차순위…한국도 한차례 언급 그쳐

이날 연설에서 헤그세스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인태 동맹국들의 국방비 증액 필요성을 거론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한차례 언급하는 데 그쳤다.

한국은 P-8 초계기의 역내 수리 역량 구축을 거론하면서 한차례 언급했다. 같은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호주를 수차례 언급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는 작년 12월 한국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미간 정상외교가 사실상 단절되고, 바이든-트럼프 2개 정권에 걸친 미국의 국방장관이 인태지역을 방문하면서 잇달아 한국을 패싱한 일과 연결되는 일일 수 있다.

북한 문제를 덜 언급한 것도 한미 간 정상외교를 포함한 고위급 외교가 차질을 빚으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북한 위협을 강조할 기회가 적었던 것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차원이 아니라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정상 간 대화 등을 통해 '미봉' 또는 '관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한 것일 수 있다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최근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 위협을 억제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주한미군 태세 조정을 할 가능성을 시사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한미군 4천500명 감축 및 재배치 검토를 보도했다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중국 견제에 '다걸기'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태전략이 대북 경계 태세 완화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다음 한국 정부의 중요한 숙제가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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