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번엔 미 국방부 입에서 “주한미군 감축 배제 안해”

2025-05-31 (토) 12:00:00 박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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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당국자 “중 맞서기 위해 결정”

▶ ‘대북 억제→중 봉쇄’ 전환 촉각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 또다시 제기됐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의 입을 통해서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선 주한미군 역할의 '현상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미 조야 주장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현직 군 당국자들의 이 같은 발언은 더욱 구체화·노골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AP통신은 29일(현지시간) 2명의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주둔군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주한미군 병력 규모를 감축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과 함께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로 이동하면서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 학계·정치권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이번처럼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직접 주한미군 역할의 변화, 즉 현상 변경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AP통신은 "미국은 중국의 잠재적 대만 침공과 이 지역의 동맹국에 대한 기타 침략 행위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억제력으로 인도·태평양 전역에 군대와 군함을 최적으로 배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시사하는 미군 고위 관계자들의 최근 발언 수위는 심상치 않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15일 하와이에서 열린 미 육군협회 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 연설에서 지정학적 위치를 들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하기 위한 '항공모함'으로 한국을 묘사했다.

“미군 전력 재편돼도, 한반도 방어 문제없어”



그는 “(한국의 위치는) 북한·러시아·중국 지도부의 셈법을 바꾸고 미국에는 선택지를 준다”고도 했다.

22일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익명의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 당국이 약 4,500명의 주한미군 병력을 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는 이튿날 이를 부인했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나온 것이다.

주한미군 역할 확대론은 ‘중국 봉쇄’를 목표로 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맞물려 있다. 2018년 미 국방부는 최대 지역 통합군이자 주일·주한미군을 지휘하는 ‘태평양 사령부’ 명칭을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변경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 저지’를 최우선 과제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후 미 해군과 중국 해군 간 대만해협에서의 대치 수위가 꾸준히 상승했고, 이는 대만 유사시 주일미군은 물론 주한미군 동원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브런슨 사령관이 “주한미군의 초점은 북한 격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부분으로서 역내 작전, 활동, 투자에도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다만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높이더라도 한국을 방어하는 미국의 동맹 의무가 약화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30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한미군 감축설에 대한 질문에 “미국 행정부가 부인한 사안이기 때문에 가정적 차원에서 답하겠다”면서 “주한미군의 전력이 재편되더라도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기반을 둔,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어) 공약이 약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 전쟁이 발발한다면 인도·태평양 전역과 미 본토에서 수만 명의 보강 전력이 올 것”이라고도 밝혔다. 한반도 고정 병력 감소가 꼭 대북 억지력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박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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