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소법원, 전날 무효 판결 ‘일시 정지’
▶ 트럼프, 내달 9일까지 한숨 돌렸지만
▶ 상대국들 향후 ‘소극적 협상’ 가능성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부과한 고율 관세가 하루 만에 부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행정명령은 무효”라는 28일 미국 연방법원 판결에 29일 항소법원이 ‘내달 9일까지 일시 정지’를 명령하면서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운명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관세 복원 결정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숨을 돌렸지만, 마냥 안도할 상황은 아니다. 관세 정책 불확실성이 짙어지며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차후 미국과의 협상에 소극적으로 나설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 소재 연방 항소법원은 29일 1심 재판부인 연방국제통상법원이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등을 무효로 판결한 데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1심 판결에 불복해 제출한 ‘판결 효력 정지’ 요청을 받아들여 “판결 집행을 일시 중단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판단의 이유는 달지 않았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계속 부과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내달 9일까지만이다.
항소법원은 소송 원고에게 내달 5일까지 효력 정지 신청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라 했고, 피고인 미국 행정부 측에는 9일까지 재답변서를 내라고 명했다. 서면 제출 마감일까지는 관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9일 이후 조치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으나 항소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현 상태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항소심 판결은 양측 답변서 접수 후 이르면 수일, 늦다면 수주 내 나올 것으로 점쳐진다.
이날 항소법원의 결정은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의 승리로 평가된다. 1심 판결대로 관세가 무효화했다면 트럼프 행정부를 상징해온 대표적인 정책이 진도를 제대로 빼보지도 못한 채 좌초할 수 있었다. 무역 적자 해소를 목표로 추진해 온 국가별 통상 협상에도 차질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관세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는데, 이를 빼앗긴 채로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치명타를 맞을 뻔한 위기를 하루 만에 넘긴 셈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차후 협상에서 유리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관세 운명이 불과 하루 만에 뒤집힌 것은 협상 상대국들로 하여금 ‘기다리면 관세가 다시 철회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AP통신은 “외국 정부들은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될 가능성을 고려해 협상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짚었다.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무역 협상이 더욱 늘어질 조짐을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도 조바심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전날 1심 판결에 침묵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연방국제통상법원의 판결은 너무 잘못됐고 너무 정치적”이라고 맹비난했다. “대법원이 이 끔찍하고 국가를 위협하는 결정을 신속하고 단호하게 뒤집기를 희망한다”고도 썼다. 만약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이 뒤집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법원에서 법리를 다투겠다고 공식화한 것이다.
이는 사법부에 대한 압박인 동시에 무역 상대국들을 향한 위협으로도 해석됐다. ‘관세가 무효화할 일은 없을 테니 협상에서 발 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발신한 것이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이 문제가 대법원까지 갈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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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