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그 이름, 엄마
2025-05-08 (목) 12:00:00
성민희 수필가
마켓 진열장에 있는 명란젓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아. 엄마. 부엌 귀퉁이 식탁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시던 엄마가 이젠 안 계시지. 가셨지. 줄줄 흐르는 눈물을 누가 볼세라 팔을 굽혀 올려 얼굴을 문지른다. 핸드백에서 선글라스를 꺼내어 쓴다.
어머니는 우리를 떠나기 두 주 전부터 말씀하셨다. “이제 부터는 기도 제목을 바꿔라. 나를 어서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라고 기도해라. 내가 이 땅에 더 있을 이유가 없네. 너희들이 너무 고생이다.” 무슨 말씀이냐며 우리는 눈을 흘겼지만 어머니는 심각하셨다. 노인은 치매기가 좀 있어서 어리버리 해야 하는데 엄마는 너무 똑똑하셔. 농담으로 넘기긴 했지만 그 즈음 어머니는 달라지셨다. 밥을 못 넘기고 멀겋게 삶은 숭늉이나 죽만 드셨다. 그러고는 떠나셨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 나의 가장 큰 슬픔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어줄 사람, 나를 응원해줄 사람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내 손만 잡아도 행복해하던 사람. 엄마. 어머니는 결코 거창한 말을 쓰지 않았다. “밥은 먹었니?”, “운전 조심해라” “어둡기 전에 집에 들어가라.” 일상의 언어가 모두 사랑이었다. 연세가 드시고 기력이 나날이 쇠약해져 언젠가 떠날 줄은 알았지만 정말로 그렇게 가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부모를 먼저 보낸 지인이 어머니 살아계실 때 잘 해 드리라는 말을 할 때는, 더 이상 어떻게 잘해. 내가 이 세상 최고의 효녀인양 으슥했는데 가시고 나서 돌아보니 잘못한 일이 너무 많다. 한 친구는 엄마라는 단어만 들먹이면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내일 새벽에 잠깐 다녀가라고 하시던 양로병원의 엄마 말씀을 예사로 들었다고 했다. 가게를 오픈하기에 바빠 방문을 오후로 미뤘는데 그날 새벽에 돌아가셨다. 그때 왜 그랬을까. 가게를 하루 쉰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가실 줄 몰랐어.
문화와 시대를 초월해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울림을 주는 단어. 엄마. 예술과 종교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그토록 숭고하게 그려지는 것은, 그 사랑이야말로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순수하고 정결한 형태이기 때문이 아닐까.
일찍이 그리스에서 시작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정복하지 못하고 그 국경에서 돌아서야 했던 이유는, 군사들이 어머니를 부르며 흐느낀 까닭이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결국 알렉산더의 진군을 멈춘 건 거대한 산도, 강도 적군의 위협도 아니었다. 지친 병사들의 입에서 새어나온 단 한 마디, “엄마”. 그 이름 앞에서 제국의 야망은 걸음을 멈췄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칼이 아니라 그 칼을 쥔 손을 키워낸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어머니 주일’만 되면 예배 도중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살아계신 한국의 어머니가 생각나서, 이미 저 세상으로 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서. 살아계셔도 돌아가셔도 이세상의 어떤 것 보다 더 따뜻하고 정겹고 애틋해서 우리를 눈물 흘리게 하는 사람. 그 이름, 엄마.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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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