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에 이민이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으며 살았다. 그러던 내게 ‘같이 살아보고 싶은 사람’을 서른 넘어 늦은 나이에 만나게 되어 낯선 미국 땅에 살게 됐다.
나 자신도 새로운 사회를 배워가는 ‘초보’였기에,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기 위해서는 한가지 목표를 세워야 했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되, 한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배우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적인 것’은 학교와 친구들에게 맡기고, 나는 집에서 ‘한국’을 보여주고 익힐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집중했다.
아침 식탁엔 빵과 버터대신 밥과 김치가 오르고, 아이들과는 서로 한국어 존댓말로 말하며 ‘한국적인 예절’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젓가락질을 배웠고,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숙여 배꼽 인사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일상의 작은 퍼즐과 같은 한국적인 경험과 실천들이 우리 집을 ‘미국 속 한국 문화 체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도시락도 한식을 위주로 준비했다. 나는 새벽잠을 반납하고 아침 일찍부터 밥을 새로 지었고, 김밥, 주먹밥, 김치볶음밥, 멸치볶음, 불고기, 잡채 등을 만들었다. 우리 두 아이는 김치를 유독 좋아하여 김치 국물을 꼭 짜서 참기름에 살짝 무치거나 오이지를 새콤달콤하게 무쳐 반찬으로 곁들여 싸보내곤 했다.
특히 오이지는 유독 둘째 아이가 좋아했다. 아삭하고 오독오독한 식감과 맛에 아이는 물론, 친구들도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다음 달에 미쉘 생일이 있는데, 선물을 뭘 갖고 싶냐고 물었더니... 오이지를 선물로 받고 싶대요!”라는 것이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의아했다. 이유를 물으니, 미쉘이 오이지 도시락 반찬을 볼 때마다 “매일 이렇게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 “네가 한국인이라 정말 부러워”라고 말했다는 거다. 한국 엄마에게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말까지 들었다니, 있을 수 있는 말인가 싶었다. 얼마나 오이지와 한국음식이 좋으면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었을까. 그 이야길 듣는 순간, 내가 새벽잠을 설쳐가며 아이 도시락에 넣어 보냈던 오이지무침이 딸아이 친구에게는 한국 문화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로 장에 가서 피클오이를 사다가 오이지를 담아 잘 익은 오이로 오이지무침 한 병을 만들어 생일선물로 들려보냈다. 오이지 선물을 받은 미쉘의 후문은 더 재미있었다. 미쉘의 부모는 오이지 병을 보자마자 너도 나도 먹어보겠다고 아우성이었고, 일주일은 두고 먹을 법한 꽤 되는 분량을 그날 저녁식탁에서 식구들이 서로 먹겠다면서 쟁탈전을 벌이면서 순식간에 먹어버렸다고 한다.
전 세계 어디에나 오이피클은 다양하게 있지만,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온 한국식 오이지 레시피가 이렇게 타인종 아이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는 사실에 자부심과 감사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제 우리는 한국 음식을 냄새 때문에 맘놓고 먹지 못하던 이민 초기 시절은 가고, 오히려 웰빙음식이 되어 코스코 매장에 다양한 K푸드가 진열되는 한류의 세계화시대를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앞날을 응원하고 축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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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장 페닌슐라 한인학부모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