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환율 콕 집은 베선트 ‘원화 절상’ 압박 예고

2025-04-26 (토) 12:00:00 세종=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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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협상 테이블에 환율도 올라
▶ 한국에 외환스와프 등 요구할 듯

▶ 경제안보 의제, 중 견제 의도 분석
▶ 공급망·기술유출 공동대응 관측

한미 통상협의에서 환율이 주요 협상 의제에 포함되면서 향후 미국 측에서 원화 가치를 높이라는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앞서 환율 조작을 ‘8가지 비관세 부정행위’ 유형 중 첫 번째로 꼽았는데, 교역 상대국들이 자국 통화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춰 대미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배경이다.

24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 2+2 통상협의’에서 양측은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 상호관세 유예기간인 오는 7월 8일까지 ‘7월 패키지(July Package)’를 마련키로 했다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밝혔다. 양국 국익을 바탕으로 한 요구사항을 주고받아 균형을 맞추는 방식이다.

관세·비관세조치와 투자협력의 경우 우리 정부가 예상했던 사항이었지만, 환율 정책과 경제안보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특히 환율의 경우 미국 측에서 협상에 임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직접 의제에 포함시키면서 원화 가치 절상 압박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300원대에 머물렀던 원·달러 환율은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이달 초 1,480원대까지 치솟았다. 다만 상호관세 유예를 전후로 달러 약세로 전환해 1,430원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한국을 1년 만에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하기도 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실제 미국은 대미 무역 흑자 자체가 환율에 의한 불공정 무역에서 비롯됐다는 가정을 하고 있어 원화 강세를 유도하려 압력을 가할 수 있다”며 “원화가 과하게 저평가돼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단 인식을 불식시킬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상대국과 외환시장에 공동 개입, 달러 가치 하락을 유도해 무역적자를 축소한 바 있다. 다만 지금 이 방식을 시도하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40년 전에 비해 외환시장 규모가 커져 공동 개입으로 환율 방향을 바꾸긴 쉽지 않다”고 짚었다. 대신 한국에 기준금리 상향, 외환스와프, 외국인 투자 유치 등을 압박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경제안보가 의제에 포함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일각에선 중국 견제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술 협의가 시작돼야 어떤 내용을 포함할지 결정할 수 있어 예상하기 어렵다”며 “한국도 수출 통제, 기술 유출 등 측면에서 제도 정비를 해왔지만 특정 국가에 대한 조치는 하고 있지 않아 향후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크게 공급망 취약성 해소, 기술 유출 통제 강화 관련 협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희토류나 핵심 광물 수출을 전면 통제해 무기화할 것을 대비해 한미가 공동으로 인도네시아 등 대체 공급망을 형성 또는 분산하는 방안, 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막기 위한 조치 등이 언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 정부는 차기 정부 출범이 예정돼있는 만큼 속도 조절을 희망하나 미국 측은 서두르는 양상이다. 베선트 장관은 “이르면 다음 주 양해에 관한 합의에 이르고 기술적인 조건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일부 사안은 7월 전 성과를 내려 압박 수위를 높일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양국은 국·과장급이 참여하는 분야별 작업반을 구성, 다음 주부터 실무협의를 개시할 방침이다.

<세종=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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