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긴급진단/재외선거법 이대론 안 된다] 비행기 타고 가서 투표하라니… ‘불가능한 선택’강요

2025-04-25 (금) 12:00:00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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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투표방식 대폭 확대해야
▶ 재외선거 투표율 7.5% 불과

▶ 공관 방문 투표로는 한계
▶ 국회에 이미 개정안 발의
▶ 우편투표 등 적극 도입해야

[긴급진단/재외선거법 이대론 안 된다] 비행기 타고 가서 투표하라니… ‘불가능한 선택’강요

지난해 3월 22대 총선 재외선거 당시 LA 총영사관에 설치된 재외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LA를 비롯한 전 세계에 거주하는 재외동포 수는 약 732만 명. 이 중 295여만 명이 대선과 총선에 투표할 수 있는 선거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 실제 투표에 참여한 재외국민은 고작 16만1,878명. 실질 투표율은 71.6%였지만, 전체 재외유권자 대비로는 5.5%에 불과했다. 가장 높은 참여율을 기록했던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도 전체 재외국민 중 7.5%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이는 투표권을 가진 재외국민 중 극히 일부만이 참정권을 실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저조한 투표율의 핵심 원인으로 공관 투표소 방문 방식의 한계를 지적한다. 현재 재외선거는 전 세계 177개 공관 등에 설치된 219개의 투표소에서만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주의 면적은 한국의 4.2배지만, 해당 지역에 설치된 투표소는 6곳에 불과하다. 남가주와 네바다, 애리조나, 뉴멕시코가 포함된 LA 총영사관 관할지역의 투표소는 단 4곳이다. 남가주가 아닌 타주 지역 거주 재외선거인들은 투표를 하기 위해 차량으로 수십에서 수백 마일을 이동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투표는 ‘불가능한 선택’이 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강 의원 등 11명 의원들이 최근 공동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올라와 있다. 이 법안은 ▲배달 확인이 가능한 우편을 통한 재외 거소투표 ▲전자투·개표 시스템 도입 ▲후보자 등록기간 조정 등 재외선거의 실효성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포괄해서 담고 있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개발 중인 블록체인 기반의 ‘K-보팅’ 시스템이 본격화되면 그동안 우려됐던 전자투표의 보안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치권 내에서는 여전히 부정선거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이 높고, 과거 우편투표 법안이 번번이 좌절된 전례도 있어 이번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프랑스는 2012년부터 재외국민 전용 지역구를 만들어 1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고, 미국과 독일 등도 우편 또는 전자 방식의 투표를 병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재외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의석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는 참정권 보장의 국제적 흐름에서 한국이 크게 뒤처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단체장은 “재외국민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참정권은 보편적 권리”다. “재외선거제도 개선은 단순한 절차 문제를 넘어 재외동포 정책의 핵심 과제”라고 강조하며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하루 빨리 재외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제도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외 한인사회에서는 “한국 국회가 재외국민의 현실적 참정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정비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295만 재외국민 유권자의 목소리가 제도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우편투표와 전자투표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다.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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