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년 전 사재기 ‘데자뷰’… 그런데 품목은 ‘딴판’

2025-04-2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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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습식 사료, 포장재 관세 대상
▶ 한국산 선크림, 대체 불가 우수 기능

▶ ‘가발·헤어’ 용 인모, 대부분 중국산
▶ 김, 식당주 사이 ‘저장·보관’에 용이

5년 전 사재기 ‘데자뷰’… 그런데 품목은 ‘딴판’

지난 16일 중국 상하이 푸여우먼의 한 가발 상점에서 직원이 앉아 있는 모습. 관세 부과로 가발 제조에 사용되는 중국산 인모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전망에, 미국 내 판매업체와 소비자들이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

5년 전 모습이 마치 데자뷰처럼 재현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사재기 현상이 다시 나타난 것. 관세로 물가가 폭등하기 전에 필수품을 사두려는 소비자들이 요즘 다시 마켓과 상점 앞에 줄을 서고 있다. 그런데 5년 전과 사뭇 다른 점은 사재기 품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급망이 막혔던 5년 전 인기 사재기 품목은 화장지와 식료품 위주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지금 주방세제, 올리브 오일, 와인, 화장품 등을 챙겨두기 위해 상점을 찾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대한 관세가 90일 유예되면서, 소비자들의 사재기 열풍은 오히려 더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상점, 마켓, 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비자들이 사재기 품목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주요 품목을 알아본다.

■고양이 습식 사료

고양이 집사들은 현재 고양이 습식 사료를 챙기기 위해 혈안이다. 반려묘 주인들이 가격이 오를 것으로 걱정하는 것은 식품 원재료뿐만이 아니다. 바로 습식 사료 포장에 사용되는 재료인 주석도금 강판(틴플레이트 강)이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때부터 관세 부과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는 식품 원재료에까지 관세가 부과되면 고양이 습식 사료 가격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고양이 사료도 있지만, 알레르기가 있거나 입맛이 까다로운 반려묘를 둔 집사들은 건강과 취향을 위해 수입 사료를 대량 구매하고 있다.

온라인 토론 커뮤니티 ‘레딧’(Reddit)에서는 현재 고양이 습식 사료 관련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알레르기 있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한 이용자는 “우리 고양이가 먹는 사료의 주요 성분은 프랑스에서 수입되는데, 팬데믹 당시 공급망 문제로 겪었던 불편함이 다시 올까 봐 걱정된다”라며 “다행히 진공 포장된 사료는 거의 2년까지 보관할 수 있는데, 지금 약 6개월 치를 쟁여두었다”라고 준비 상황을 전했다.

■한국산 선크림

작년 10월 워싱턴 포스트의 조사에서 한국산 선크림이 미국 제품보다 자외선 차단 효과가 훨씬 뛰어나다는 점이 입증된 바 있다. 화장품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선크림이 의약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유럽과 아시아에서는 화장품으로 분류), 선크림 제조에 제약이 많다. 그래서 자외선 차단, 부드러운 질감, 다른 메이크업과 잘 섞임 등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미국산 선크림을 찾기 힘들다. 반면, 한국산 선크림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것으로 이미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다. 한국산 선크림의 우수한 기능이 알려지면서 최근 소비자들의 사재기 품목에 한국산 선크림도 포함됐다. 레딧 이용자 사이에서는 한국산 선크림이 최고 제품으로 꼽히는 가운데, 한국산 선크림을 1년치나 구매했다는 한 이용자는 “한국산 제품을 한번 사용하면 미국 제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고 사용 후기를 남겼다.

■웨딩 드레스

웨딩 드레스에 ‘사재기’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다소 적합하게 들리지 않는다. 재혼을 계획하지 않는 한 웨딩 드레스 한 벌만 구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세 조치가 웨딩 드레스 가격을 급격히 상승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최근 웨딩 드레스를 미리 주문하는 예비 신부들이 늘고 있다. 웨딩 드레스는 구매 비용이 높은 편으로 디자인, 브랜드, 소재 등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올해 34세로 플로리다에서 법률 분석가로 일하는 코트니 씨는 오는 11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가을부터 온라인으로 드레스를 검색해 오던 중 LA의 한 쇼룸에서 마음에 드는 브랜드와 디자인을 찾았다. 5월 LA를 직접 방문해 직접 몇 벌 입어보고 고르려고 계획하던 중 갑작스러운 관세 소식이 들려왔다. 코트니 씨는 웨딩 드레스가 중국에서 배송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서, 한달 전에 이미 주문을 마친 상태다. 코트니 씨는 “꿈꿔왔던 방식의 웨딩 드레스 구입 경험이 아니지만 관세로 가격이 오를 것을 걱정하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아쉬워했다.


■ ‘인모 묶음’(사람 머리카락)

가발이나 헤어 익스텐션에 사용되는 인모의 상당 부분은 해외, 특히 중국 판매업체로부터 수입된다. 인모 익스텐션은 보통 묶음당 100달러에서 400달러 사이로, 품질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가공되지 않은 생머리’가 가장 고급 제품으로 여겨지는데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은 훨씬 더 오를 수 있다.

관세 조치가 발표되자 인모 공급업체와 미용업계, 소비자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한 공급업체는 틱톡 영상을 통해 “원래 100달러정도 하던 인모 묶음에 관세가 붙으면 우리가 수입하는 비용이 120달러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라고 소비자들에게 알렸다. 인모 가격 상승은 헤어 익스텐션의 주요 소비자 층인 흑인 여성, 암 환자, 탈모 환자, 볼륨감과 스타일을 위해 익스텐션을 사용하는 연예인 및 일반 여성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주 오렌지 카운티에서 헤어 익스텐션 살롱을 운영하는 폴리나 벨체즈 씨는 최근 약 2만 2,000명의 틱톡 팔로워에게 향후 6개월치 재고를 쌓아두었다며 일단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다른 미용업체들은 하이라이트용 포일과 염색약을 사재기에 나서고 있으며, 관세로 인해 가격이 오르기 전에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관세 헤어 세일’(Tariff Hair Sales)에 나서는 판매업체도 등장했다.

■향수

Z세대 인기 소장품 중 하나가 바로 향수다. 가뜩이나 만만치 않은 향수 가격이 관세 부과로 더 비싸질 전망이다. 글로벌 향수 산업의 대부분은 서유럽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향수 애호가와 판매 업체들은 관세에 대비해 미리 제품을 사들이고 있다. 특히 캐나다의 인기 브랜드 ‘주얼로지스트’(Zoologist), 프랑스 향수 브랜드 ‘프라고나르’(Fragonard), 영국 향수 ‘파필리온’(Papillon) 등의 향수 제품이 최근 관세 적용 전 사재기 타깃 품목으로 많이 팔리고 있다.

■마른 김

플로리다 탬파에서 스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관세 부과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일본산 김을 열심히 사재기하고 있다. 일식당 필수 식자재인 마른 김은 저장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사두려고 한다. 이 업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김 한 박스에 이미 15달러나 올랐다”라며 “다른 식자재 가격이 오를 것에 대비해 김을 사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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