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체질 핵심이 중국 무역동반자이자 미국 수출국
▶ 미중 무역전쟁에 선택 강요…경제구조 재편론 대두
▶ 더블혜택이 이중재앙으로…대미수출 급감·중국덤핑 타격 우려
미중 무역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신흥경제국인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불가능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관세 공세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필사적 저항에서 수십년간 굳어진 경제적 체질이 진퇴양난으로 현실화했다.
최대 무역 동반자인 중국에 의존하면서도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의 관계도 유지해야 경제를 보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양자택일 압박이 가중되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4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마치면서 이런 현실은 더 선명해졌다.
시 주석의 순방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에 맞서 무역 전쟁을 벌이는 시기에 같은 처지인 이들 3개국에 손을 내밀기 위한 행보였다.
이번 순방에서 시 주석은 미국의 '강압'에 맞서 함께 힘을 합치자는 메시지를 주로 전달했다.
동남아 3개국은 시 주석을 환영하며 '레드카펫'을 깔아주면서 보호무역주의와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중국 입장에도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과 관세 협상도 계속 진행해야 하는 처지인 동남아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베트남은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이 46%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자국의 대미 관세율을 인하하겠다면서 협상 의사를 밝혔다.
태국 고위급 관계자도 미국에서 수입과 투자를 늘리는 계획을 들고 미국으로 향했다.
텡쿠 자프룰 아지즈 말레이시아 무역장관은 시 주석의 순방을 앞두고 BBC 방송에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할 수 없고, 절대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우리 이익에 반하는 문제가 있으면 우리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BBC는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갇혀 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동남아 국가들이 경각심을 갖고 미국과 중국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 민주주의·경제 연구소의 경제학자 도리스 리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가 유예됐어도) 이미 피해를 이미 봤다"며 "동남아에 경각심을 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의존도를 줄여야 할 뿐만 아니라 단일 무역이나 수출 파트너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재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제적 체질 변화는 장기적 과제일 뿐 동남아는 당장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닥쳐올 난제에 고심하고 있다.
수출주도형 경제인 동남아 국가들은 잠시 미뤄진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가 실제로 부과되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매달 200만 달러(약 28억원) 상당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액세서리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 베트남 기업가는 BBC에 "(미국이 베트남 제품에 46%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 사업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향후 무역전쟁으로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 제품이 싼값에 동남아 시장으로 밀려드는 상황도 걱정했다.
이 기업가는 "중국 제품과는 경쟁할 수 없다"며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많은 베트남 기업이 국내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도 미국으로 수출될 저가 중국 제품이 동남아로 유입돼 현지 제조업계에 타격을 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수면복을 만드는 사업가 이스마 사비트리도 "인기 있는 옷은 한 벌에 7.1달러(약 1만원)에 파는데 중국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이 그 가격의 절반 정도에 팔린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소규모 기업은 압박받고 있다"며 "초고가 중국 제품의 홍수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