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매물로 나온 미국 경제

2025-04-16 (수) 12:00:00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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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전환은 세계적으로 환영을 받았다. 자신의 관세에 양보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노선 변경을 촉구하는 모든 사람을 ‘패니칸’(PANICAN: 약하고 멍청한 사람들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당)으로 낙인찍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태도를 바꿔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거래를 원하는 국가들과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유예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엔 너무 이르다. 예일 버짓랩에 따르면 여전히 100년래 최고 수준인 미국의 관세는 국민 모두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세 협상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총체적 부패다. 미국 경제는 세계 최고의 자유시장에서 정실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본보기로 변모하고 있다.

시장경제는 제약이 따를 때, 특히 그 제약이 분명하고 공정하며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때, 최고로 기능한다. 세금과 규칙, 규제가 복잡하면 할수록 경제의 비효율성도 커진다. 인도로부터 나이제리아와 모로코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를 상대로 이루어진 연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규제가 복잡할수록 부패 또한 커진다는 점이다.


관세와 함께 수 백개의 구체적인 산업과 기업, 심지어 상품에 대한 면제가 따라온다. 2018년과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5%의 관세를 매긴 철강을 비롯해 다양한 관세 품목 발표에 이어 면제 프로그램까지 함께 내놓았다. 그 당시 접수된 면제 신청은 50만 건을 헤아린다. 이번주 트럼프는 면제 대상을 어떻게 결정할 것이냐는 질문에 “본능적으로”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제까지 나온 연구 결과로 보아 정치인의 본능은 보통 기부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이것이 만연된 부패를 조장한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시스템을 바꾸어버리기 전까지 미국 역사의 상당 부분에 걸쳐 관세는 부패를 조장했다. 폴 크루그만의 말을 빌리자면 루즈벨트의 개혁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소문날 정도로 부패한 미국의 관세정책이 놀랄만큼 깨끗해졌다.”

관세는 부패 속도가 빠르다. 트럼프 재임 1기의 관세와 관련한 상세한 학술연구는 “신정부 출범 초기를 전후해 공화당내 정정치적 인맥에게 상당한 액수의 기부금을 제공한 기업들은 당연히 관세가 부과되었어야 할 상품에 대해 면제를 받는 비율이 높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 정치인에게 기부한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관세 면제 승인을 받을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졌다.”

트럼프 재임 1기 동안 접수된 7,000건의 중국 상품 관세 면제 신청을 살펴본 연구진은 민주당 후보에게 단 4,000달러를 기부한 기업이 관세 적용 면제를 부여받은 확률은 10건 당 1건 미만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AEI의 티모시 카니가 지적하듯 “트럼프의 첫 번째 대통령 당선은 무역 로비 붐을 불러왔다.” 무역 관련 로비스트를 고용한 고객들의 수는 행정부 출범 첫 해의 921명에서 2019년에는 1,419명으로 정점에 도달했다.

세계 선진공업국들 가운데 최고의 고율 관세와 함께 미국 시장의 문이 열렸다. 외국 정부와 기업들은 무역협정 거래를 성사시키고 관세인하, 면제와 특별대우를 얻어내기 위해 워싱턴으로 몰려올 것이다. 과거 몇주 사이에 베트남은 트럼프 행정부를 다독여 유리한 무역협상을 체결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발표했다. 그 중에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를 자국내에서 운용하도록 승인하고 트럼프 오거니제이션 프로젝트를 가속화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 트럼프 재임 2기 동안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그의 부동산 프로젝트만도 최소한 19건에 달하며 이외에도 상당수의 부동산 개발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자체적인 소셜미디어 회사와 밈 코인을 소유하고 있다. 외국 정부는 이를 트럼프가 보낸 투자 초청장으로 간주한다. 여기에 화답하면 미국의 외교 및 경제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월가의 명망 높은 인사인 미국의 일부 전설적 자본가들이 관세, 세금, 규칙, 면제와 특혜로 얼룩진 미국의 자유시장을 둘러싼 거래 과정을 지지하는 모습은 매우 낙담스럽다. 여기서 밀턴 프리드먼의 반복된 경고를 다시금 떠올릴 필요가 있다: “저명한 사업가라면 누구나 자유시장의 미덕에 관해 설득력있는 연설을 할만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본인의 사업체를 위해 그들은 워싱턴으로 달려가 특별 관세를 얻어내려 든다. 그들은 정부의 특별 세금 공제와 세금 보조금을 원한다.”

필자가 성장기를 보낸 인도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불공정한 것으로 간주되는 외국의 경쟁을 막기 위해 관세와 높은 무역장벽을 겹겹이 구축했다. 그 결과 정체, 빈곤과 부패가 만연하면서 경제가 속속들이 정치화됐다.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규모에 상관없이 그 어떤 비즈니스도 살아남지 못했다. 미국으로 건너온 필자는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백악관에 누가 있느냐에 상관없이 자유로이 비즈니스를 운영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나 트럼프의 천재성을 찬양하는 테크 선구자들의 비굴한 인터뷰와 트럼프 자신이 취한 조치로부터 경제를 구원한 대통령의 공로를 북한식 축하 메시지로 포장하는 월가 거인들의 경쟁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문득 한 가지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나는 지금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가?”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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