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폐증 원인 5개월내 규명한다는 美장관…답은 결국 ‘백신 탓’?

2025-04-11 (금) 01:10:41
크게 작게

▶ 케네디 보건복지장관, 트럼프 앞에서 큰 소리…트럼프도 동조

▶ 전문가들 “수십년 걸릴 연구인데…과학적 근거 없는 결론 우려”

자폐증 원인 5개월내 규명한다는 美장관…답은 결국 ‘백신 탓’?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로이터]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폐증의 원인을 5개월 이내에 규명하겠다고 장담해 그가 과거 주장한 것처럼 과학적 근거 없이 백신이 원인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CNN 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케네디 장관은 전날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자폐증 유행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 오는 9월까지 규명하기 위해 전 세계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검사와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케네디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9월이면 우리는 자폐증의 원인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런 노출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을 일으키는 인위적인 어떤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만약 당신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면, 거기서 무언가를 먹는 것이나 받아들이는 것을 멈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주사(a shot)일 수 있다"고 동조했다.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사를 언급한 것이 케네디 장관이 그동안 주장해온 백신 접종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백신 회의론자로 유명한 케네디 장관은 지난달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백신과 자폐증의 관련성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미 식품의약국(FDA)의 백신 책임자인 피터 마크스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CBER) 소장은 이에 반발하다 최근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스 소장은 사직서에 "장관은 진실과 투명성을 바라지 않으며, 자신의 잘못된 정보와 거짓말에 대한 복종적인 확인만을 바란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적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백신 전문가를 자처해온 인물인 데이비드 가이어를 '수석 데이터 분석가'로 고용했다.

케네디 장관은 미국에서 자폐증 아동 비율이 2000년 150명 중 1명꼴에서 최근에는 31명 중 1명꼴로 늘었다는 통계를 들어 자폐증 유행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백신 접종을 받은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자폐증 발병률을 비교해 백신을 접종한 경우 발병률이 높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폐증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검사 자체가 늘어난 것이 발병 통계 증가의 주요 배경일 수 있으며, 통상 아동 예방접종 권고를 잘 따르는 가정의 경우 의료 서비스나 의사와의 접촉 빈도가 높아 자폐증을 조기에 확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자폐증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유전적인 요소와 부모의 고령화, 태아기 대기오염 또는 특정 살충제에 대한 노출, 기타 환경적인 영향 등 많은 요인이 꼽히는 가운데, 주된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면 연구 방법을 설계하는 데에만 수개월이 걸린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지난 20여년간 자폐증 원인을 연구해온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마인드(MIND) 연구소의 어바 허츠-피치오토 박사는 자폐증 원인에 대한 연구를 오는 9월까지 끝낸다는 보건복지부 계획을 두고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자폐증협회는 성명에서 "우리는 추측에 기반하거나 투명성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단축된 계획이 아니라, 엄격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우리는 (보건복지부의) 이런 연구를 누가 주도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이 사용되고 있는지, 그것이 과학적 기준을 충족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자폐증옹호네트워크의 책임자 조 그로스는 "그들은 '자폐증의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지 않고, '자폐증이 특정 요인에 의해 유발된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진행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