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별기고] 참혹했던 북한군의 서울대병원 학살사건

2025-04-08 (화) 12:00:00 김용제 안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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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국의 신문들이 6.25전쟁 때 북한 인민군이 서울대병원에 있던 1,000여명의 국군부상병들을 학살한 사건에 관해 크게 보도하였다. 진실화해위가 이를 최초로 집단 학살로 공식 판단했다는 보도를 보고 당시 중3이었던 필자가 75년 전 목격했던 사실이 어제 본 일처럼 떠올랐다.

우리 집은 그 참사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약 200미터 떨어져 있었는데 북한군이 서울에 입성한 6월28일 첫날 밤새도록 뒷담 너머에서 소총소리가 들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전투는 아닌 것 같았는데 병원 환자들을 총살하는 것이란 사실은 상상도 못했다.

다음날 나가보니 동네 앞길 창경원(궁) 정문에서 명륜동 쪽으로 몇 십미터 지난 대로의 바로 오른쪽 서울대병원 뒷동산에 수백구의 시체가 두세 사람 키 높이로 수북이 쌓여있었다. 대부분 흰 붕대가 여기저기 감겨 있는게 부상병들인게 뻔했다.


당시 전차도 다른 교통도 모두 끊긴 상태여서 명륜동 혜화동 북쪽사람들은 시내로 걸어가야만 했고, 그 장면을 모두 안보고 지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대로 방치돼있다 보니 삼복더위에서 며칠 후부터 부패하는 시체에서 나는 고약한 악취가 그 지역을 온통 덮어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코를 가리고야 다닐 수 있었다.

거기다 까마귀들이 모여들어 시체의 살을 뜯어먹는 끔찍한 풍경까지 벌어졌다. 인민군도 이를 알았는지 얼마 후 재와 흙으로 덮어씌워 냄새와 끔찍한 풍경은 사라지고 작은 언덕이 됐다. 그러나 며칠 안지나 까마귀들이 다시 와서는 흙을 여기저기서 파고 들어가 하던 짓을 계속하는게 아닌가! 참으로 참혹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그대로 놔둔 채 전쟁은 끝났고, 훗날 이에 관한 아무 보도도 없었다. 1963년에 그 자리에 작은 위령탑이 외롭게 세워진 것을 보았다.

그로부터 72년이 지난 2022년에야 그 당시 병원 내에서 부상병 총살을 목격한 지금은 고인이 된 조카가 ‘진실화해위’라는 국가조직에 이 참사에 관한 조사를 요청받고 미군한국전쟁범죄조사단 기록을 참조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진상조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는 전쟁 중 포로와 부상병 처리에 관한 국제법에 크게 어긋나는 범죄로, 전쟁 중 우리 군이나 미군의 부당행위는 열심히 조사보도하면서 그 어느 것에도 비교 안 되는 최대의 적군 참사행위가 한 국민의 요청으로 이제야 조사에 착수하게 됐다는 사실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경이다.

전쟁 당시 육사 8기생 소위였던 나의 사촌형은 개성에서부터 싸우며 후퇴해 서울대병원 앞을 지나 한강다리가 폭파되기 직전에 건너고 삼년을 싸우다 휴전 두달 전 백마고지에서 전사했는데 첫 사흘에 부상당했으면 그날 서울대병원에서 학살당한 환자의 한사람이 됐을 것이다.

거기서 죽은 국군부상병의 유가족들이 지금 몇이나 있는지도 찾지도 못할 것이고 그 참사를 목격하고 현존하는 필자 같은 사람도 몇 없을 터, 이들 증인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그 참혹한 역사가 확실하게 알려지고 남겨지길 바랄 뿐이다.

<김용제 안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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