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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추억 속의 DJP 연합

2025-04-08 (화) 12:00:00 조철환 / 한국일보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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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년 전 중국 진(秦)나라에서도,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같은 소동이 벌어졌다. 운하 기술자로 영입한 한나라 출신 정국(鄭國)이 무리한 규모의 토목공사를 진행, 국력을 약화하려 한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 중국을 통일하기 전이었던 진시황이 격노했고 외국 출신 참모를 모두 쫓아내겠다고(축객령) 선언했다. 이때 그 부당함을 논리 정연한 상소로 반박한 이가 있었다. 초나라 출신 이사(李斯)였다. 진나라가 강해진 건 경쟁국의 문물과 인재를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득했다.

■간축객소(諫逐客疏) 혹은 간축객서(諫逐客書)로도 알려진 이사의 상소는 간결하면서도 수려한 문체가 특징이다. 제갈량의 출사표와 함께 중국에서도 뛰어난 고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요즘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전문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통합 리더십의 본질을 얘기하는 다음 구절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태산은 한 줌 흙을, 황하는 작은 물줄기도, 어진 군주는 뭇 백성을 배척하지 않는다.”

■우리 현대사에도 정치인들이 서로 배척하는 대신 양보를 바탕으로 협력해 성과를 낸 사례가 있다. 헌정사상 첫 번째 정권교체인 1997년의 ‘DJP 연합’이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DJ)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JP) 자민련 총재가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 존중하며 공동전선을 이뤘다. 두 사람의 협력은 DJ가 단일 후보로 나서고, 대신 JP는 조각권을 가진 공동 정권의 국무총리를 맡는다는 합의에서 가능했다. 서로 손을 잡지 않았다면, DJ와 JP 모두 집권당 후보로 나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꺾지 못했을 것이다.

■8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대통령 탄핵으로, 예정에 없는 대선을 두 번이나 치르게 됐다.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더 불행한 건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참신한 통합 리더십의 인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시황 얘기를 할 필요도 없이, DJ가 집권 초반에 외환위기 조기 극복의 성과를 낸 건 JP의 도움이 컸다. 지난 두 차례 대선과 달리, 이번에는 스토리 있는 인물들이 펼치는 감동 많은 대선이 되길 기대한다.

<조철환 / 한국일보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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