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또 로펌 손보기…특검 선임검사 겨냥 행정명령 서명

2025-03-26 (수) 10: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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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 스캔들’ 수사한 와이즈먼 관련 로펌 제재… “나쁜 인간” 발언도

▶ 법률시장 ‘위축 효과’ 현실화… “법치 공격하는 독재적 발상” 비판 제기

트럼프, 또 로펌 손보기…특검 선임검사 겨냥 행정명령 서명

행정명령 서명하는 트럼프 대통령[로이터]

'로펌 손보기'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는 자신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담당했던 특검팀 검사와 관련 있는 로펌을 콕 찍어 제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로펌들을 겨냥한 공격을 거듭하면서 실제로 반대자들을 위한 변호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형 로펌 '제너 앤드 블록'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제너 앤드 블록 소속 변호사들의 연방 건물 출입을 제한하고 비밀 취급 인가를 해제하는 동시에, 연방 기관들이 해당 로펌이나 그 고객과 맺은 계약을 취소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이다.

제너 앤드 블록은 2016년 미국 대선의 러시아 개입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뮬러 특검팀에서 선임검사를 맡았던 앤드루 와이즈먼이 파트너로 몸담았던 로펌이다.

와이즈먼은 특검팀에서 트럼프 당시 후보의 선거운동과 러시아 사이 연결고리를 추적했고,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를 수사했다.

매너포트는 특검 수사 과정에서 과거의 불법 대외 로비 혐의 등이 드러나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뮬러 특검은 2020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결정내리지 않겠다"는 모호한 결론으로 22개월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와 관련해 와이즈먼은 같은 해 9월 발간한 회고록에서 특검팀 내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소환하고 사법 방해 혐의를 밝혔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윌 샤프 백악관 문서 담당 비서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행정명령 문서를 건네면서 그 내용을 설명할 때 와이즈먼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며 "사법 시스템을 무기화해 미국의 원칙과 가치를 공격하는 데 가담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와이즈먼을 겨냥해 "나쁜 인간"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로펌 손보기'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친민주당 성향 로펌 퍼킨스 코이를 필두로 코빙턴 앤드 벌링, 폴 와이스 등 대형 로펌의 활동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잇따라 발동했다.

이달 22일에는 정부 상대 소송이 불합리하거나 악의적일 경우 이를 대리하는 변호사와 로펌을 제재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정책에 반대하는 소송에 대한 변호사들의 프로보노(pro bono·공익을 위한 무료봉사) 활동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자신과 악연이 있는 로펌을 응징하는 것을 넘어 현 행정부 상대 소송에 참여하지 말 것을 압박한 것이다.

실제 이날 제너 앤드 블록의 행정명령에도 "정의와 국익을 갉아먹는 데에까지 프로보노 활동을 남용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압박에 따른 '위축 효과'는 현실화하고 있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출신 인사들이나 비영리단체들이 변호인이나 대리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한 전직 관료는 대형 로펌에 프로보노 변호 지원을 신청했으나, 퍼킨스 코이에 대한 행정명령이 발효된 지 하루 만에 '이해 충돌'을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다섯 곳의 로펌에서 같은 이유로 변호를 거부당했다는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공 서비스에 종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막대한 개인 돈을 들여 변호사를 구해야 할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는 적법 절차의 원칙이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헌법적 가치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러시아나 튀르키예, 헝가리 등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법치주의를 무력화할 때 사용한 수법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로스쿨의 스콧 커밍스 교수는 "이는 민주적 통치를 빙자해 행정 권력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를 무너뜨림으로써 법치를 공격하는, 독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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