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연준, 트럼프 관세發 경기·물가 우려에도 신중론 유지

2025-03-19 (수) 01:25:49
크게 작게

▶ 성장 전망 낮추고 물가 전망 올려…연내 금리인하 횟수 전망은 그대로

▶ 파월 “美 경제 건강하다…관세 충격 일시적 가능성”

연준, 트럼프 관세發 경기·물가 우려에도 신중론 유지

제롬 파월 연준의장[로이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9일 수정 경제전망(SEP)을 통해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상향 조정하면서도 기준금리 인하 횟수 전망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기보다 정책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신중히 지켜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금리 결정을 앞두고 월가에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현 4.25∼4.50%로 동결할 것이라고 이미 예측해왔다.


시장의 관심은 금리 결정보다는 분기마다 내는 연준의 수정 경제전망, 그중에서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기준금리 전망이 반영된 '점도표'에 쏠려 있었다.

연준 위원들은 이날 수정 전망에서 2025년 말 기준금리 예상치 중간값을 종전 3.9%를 그대로 유지했다.

중간값은 변함이 없었지만 직전 12월 전망 때는 현 수준 대비 3회 이상 금리인하를 기대한 위원이 5명 있었던 반면 이번 수정 전망에서는 2명의 위원만이 3회 인하를 예상했다는 점이 달라졌다.

이전보다 다수의 위원이 금리 인하 시기를 좀 더 늦출 필요가 있다는 시각에 동조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연준 위원들의 이 같은 기준금리 전망은 성장률 및 물가 전망을 바꾼 가운데 나왔다.

연준 위원들은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을 종전 2.1%에서 1.7%로 하향 조정했고,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 전망치는 종전 2.5%에서 2.7%로 높였다.

이 같은 전망 조정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성장세를 둔화시키고 물가 상승 압력을 가져올 것이란 경제 전문가들의 관측과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월가 안팎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과 강도 높은 연방정부 인력 구조조정,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물가 상승률이 다시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관세 부과 상대국의 보복관세로 무역전쟁이 격화 양상을 보이고 그 여파로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급랭하면서 미국 경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것 아니냐는 'R의 공포'(경기침체 공포)가 커지기도 했다. 이는 최근 뉴욕증시의 가파른 조정을 초래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을 반영한 경제전망 수정에도 불구하고 금리인하 예상 횟수를 바꾸지 않은 것은 정책 변화의 영향이 좀 더 명확해질 때까지 통화정책 결정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현재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부분적으로 관세에 대한 반응이라 생각한다"며 "올해 중 인플레이션의 추가 진전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관세 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 상승이 일시적일 수 있다는 것을 기본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면서도 관세가 인플레이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침체 확률이) 올라가긴 했지만 높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고,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해선 "비교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 미국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심리가 가파르게 악화한 것으로 이해하지만 실제 경제활동은 아직 그렇지 않으며, 현재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책 조정을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으며 (정책 변화 영향이) 좀 더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 만큼 (통화정책이) 잘 자리 잡고 있다"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이민, 재정정책, 규제 등 4개의 구분되는 영역에서 중요한 정책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경제 및 통화정책 방향에 중요한 것은 이런 정책 변화의 순효과(net effect)"라고 강조했다.

한편 월가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촉발한 경제 불확실성에 대해 연준이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입지가 애초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무역전쟁이 고용악화 및 인플레이션 반등을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고용안정을 위해 금리를 섣불리 내리면 인플레이션이 악화하고,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하를 중단하거나 금리를 올리면 고용 악화가 더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TS롬바드의 스티븐 블리츠 수석 미국경제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성장경로를 떨어뜨릴 무역 충격을 조성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관세에 따른 무역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라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이 관세 충격의 물가 영향이 일시적일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벌어진 연준의 '정책 실기'가 연상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그룹 고문은 "파월 의장이 관세에 의한 물가 영향이 일시적이라고 특징지으면서 '일시적'이란 단어가 재등장했다"며 "인플레이션 영향이 일시적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얘기하기엔 너무 이른 시점"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지난 2021년 인플레이션 급등 국면을 공급망 혼란에 따른 '일시적' 상승이라고 오판하고 2022년 들어서야 긴축을 개시해 물가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연합뉴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