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망상’에 사라진 낙관론… 1기 경제통(트럼프노믹스 설계자 게리 론) “관세는 퇴행”
2025-03-12 (수) 12:00:00
서울경제=김흥록 기자
▶ 시장 충격에 커지는 내부 불신
▶ 미 기업·소비자부터 정책 우려
▶ 신뢰지수 2021년 이후 최대 낙폭
▶ 월가 1년내 침체 확률 20%로 상향
▶ 증시 하락 지속땐 부자소비 감소
▶ 경기침체 부르는 기폭제 될수도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지난해 11월 4일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다음 날인 올 1월 21일까지 미국 나스닥종합지수는 8.7%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걸었던 세금과 규제 완화, 미국 내 일자리 증가 공약이 효과를 내 미국의 경제 독주가 더 강화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시장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취임 이후 10일(현지 시간)까지 나스닥은 11.6% 하락세를 달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종합해보면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혼란스러운 관세, 지출 감축, 지정학적 격변이 경기를 침체시킬 것이라는 우려”라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에 대한 믿음을 ‘마가 망상증(MAGALOMANIA)’이라고 꼬집으며 “그가 경제에 결국 해를 끼칠 것이라는 메시지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의구심을 나타내며 침체를 두려워하는 주체는 역설적이게도 미국 소비자들이다. 지난달 24일 콘퍼런스보드가 내놓은 1월 소비자신뢰지수도 전월보다 7포인트 떨어진 98.3을 기록해 2021년 8월 이후 월별 최대 낙폭을 보였다. 콘퍼런스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테파니 기샤르는 “무역·관세에 대한 언급이 이전 최고치였던 2019년 수준”이라며 소비자 심리 하락의 주요인이 관세정책에 있다고 짚었다. 이달 3~4일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비율은 39%, 반대는 49%를 기록했다. 취임 직후(1월 20~21일) 조사 때의 지지(42%), 반대(36%) 비율이 뒤집혔다.
고용을 책임지는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트럼프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지난주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놓은 3월 경기동향보고서(베이지북)에서는 12개 연방준비은행 관할 지역 중 6개 지역에서 경제활동이 정체됐고 2개 지역에서는 위축됐다고 진단했다. 연준은 베이지북에서 “석유화학제품부터 사무용 장비까지 제조 업체들은 무역정책 변화에 대한 잠재적 영향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별도로 나온 미 공급관리자협회(ISM)의 보고서 역시 “고객사들이 관세 불확실성으로 신규 주문을 중단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뉴욕에서 열린 자동차 산업 콘퍼런스에서 “캐나다·멕시코에서 수입하는 차량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자동차 업계는 겪어보지 못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자동차 산업을 강하게 만들겠다고 말했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큰 비용과 많은 혼란”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의 귀환을 환영했던 월가의 투자은행(IB)들 또한 최근 들어 낙관론을 줄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이날 종전 2.4%에서 1.7%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모건스탠리는 이미 지난주에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낮췄다. 미국의 잠재성장률(약 1.8%)을 밑도는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12개월 내 경기 침체 확률을 종전 15%에서 20%로 상향 조정했다. JP모건체이스 이코노미스트팀은 “가장 가능성 높은 두 시나리오는 미국 예외주의가 종식돼 성장률이 2% 미만으로 떨어지는 경우와 극단적 정책으로 올 하반기 침체가 오는 경우”라며 “각각 30%”라고 내다봤다. JP모건은 미국이 3%의 성장을 확보하는 시나리오는 10% 확률로 낮게 봤다. 아무리 잘해도 ‘평범한 미국(US normallism)’밖에 될 수 없다는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단기적으로 증시가 하락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관세정책이 경제에 더 큰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산업계 리더들은 관세와 규제 완화, 미국산 에너지 해방에 대응해 수조 달러의 투자 약속으로 반응했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전 참모들조차 이번 행정부의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 초까지 재무장관을 지낸 스티븐 므누신은 “지금 문제는 관세에 대한 확실성이 없다는 것”이라고 부과와 유예가 반복되는 갈팡질팡 관세정책을 비판했다.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역임한 게리 콘 IBM 부회장도 “관세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광범위한 관세 접근은 수익(revenue)를 올리는 정말 퇴행적인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월가는 이번 증시 하락이 침체를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자산 효과’가 실종된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내 연 소득 25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층은 전체 소비자의 10%로 이들이 전체 소비의 약 50%를 담당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미국이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무디스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잰디는 “증시의 변동과 소비자들의 소비력, 미국 경제 사이에는 매우 강력한 연관 관계가 있다”며 “주식시장이 이전 조정 때처럼 바로 회복한다면 아무런 해가 없겠지만 하락세를 유지한다면 소비자 지출이 줄어들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탈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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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김흥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