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초신경병증·뇌졸중·파킨슨병 등 주의
▶ 수족냉증 등 일시적 원인일 수 있으나
▶ 말초신경 손상 등 더 심각한 질환일수도
“다리와 발의 저림 증세가 심해서 정형외과에 들러 류머티즘질환 등의 검사를 했는데 모두 정상으로 나왔어요. 발에 족저근막염이 온 것 같다고 해서 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더라고요. 통증이 심해서 신경과를 찾았더니 그제야 말초신경병증이라고 하더군요.” 지난해 12월 말초신경병증 진단을 받은 김모(34)씨는“이불에 발이 스치면 아파서 양말을 신고 잠들고, 자다가도 통증 때문에 깨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을 줘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손발 저림 증세로 병원을 찾는 이가 많아진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혈액순환이 손과 발끝까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앓는 수족냉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경우로 손발 저림 증상이 나타난다. 손끝이 저리고 뻐근한 느낌이 드는 손목터널증후군, 요추 추간판 탈출증(허리디스크), 다리 정맥에 있는 판막이 손상돼 혈액이 역류하는 하지정맥류 등도 손발 저림을 유발한다. 정맥은 동맥을 통해 심장에서 우리 몸 신체 각 부위별로 공급되었던 혈액이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관이다. 김씨가 진단을 받은 말초신경병증도 손발 저림 증상이 발생하는 질병이다.
말초신경병증은 말초신경질환의 일환으로, 척추에서 근육·피부 등 신경말단으로 이어지는 신경망에 발생하는 질환이다. 말초신경은 우리 몸 곳곳에 분포된 전화선처럼 뇌에서 내리는 명령을 곳곳에 전달하고, 몸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말초신경병증의 발병 원인은 유전적 요인, 당뇨병, 알코올 등으로 다양하다. 이 중 당뇨로 인해 말초신경이 손상되면서 저림 현상과 통증, 감각둔화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하나의 신경이 손상된 단일신경병증인 경우엔 저린 증세가 팔이나 다리 등 특정 부위에 나타나지만 전신의 말초신경 상태가 악화한 다발말초신경병증은 손과 발끝부터 시작해 점차 저린 부위가 확대되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인 손발 저림은 혈액순환 문제나 특정 자세를 지속했을 때 발생하는 일시적인 문제로 자세를 바꾸면 보통 회복이 된다. 그러나 말초신경병증의 손발 저림은 증상이 지속되며 타는 것 같은 통증이 이어진다. 저리거나 시린 느낌, 화끈거림, 콕콕 쑤시는 느낌,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 피가 잘 안 통하는 느낌, 마취된 것과 같은 둔한 감각도 증상에 해당한다.
뇌졸중 역시 저림 증상을 동반한다. 다만 서서히 저림 증세가 나타나는 말초신경병증과 달리, 갑작스레 증상이 시작되고 주로 한쪽 팔다리에 저린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뇌졸중은 뇌의 일부분에서 혈관이 막히거나(뇌경색), 터져(뇌출혈) 뇌가 손상돼 나타나는 뇌혈관질환이다.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이혜림 교수는 “손발 저림 증상이 지속된다면 단순한 증상으로 넘기지 말고,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발 저림 못지않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손 떨림 현상도 파킨슨병의 주요 증상인 만큼 간과해선 안 된다. 파킨슨병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감소하면서 운동장애가 나타나는 퇴행성 질환으로, 2023년 파킨슨병으로 병원을 찾은 인원은 12만5,526명에 달했다. 2017년 처음으로 10만 명을 돌파한 이후 6년간 약 25% 급증했다. 60대 이상의 환자가 대부분이나 50대 이하 환자 수도 7%에 달하는 만큼 의심증상이 있을 경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손 떨림과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서동(徐動) 현상은 파킨슨병의 주요 증세다. 서동이 심해지면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 보행 장애가 나타나고, 얼굴 표정 등도 감소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손이 떨리는 수전증과 차이점에 대해 경희대병원 신경외과 박창규 교수는 “파킨슨병에 의한 손 떨림은 움직임이 안정돼 있을 때 주로 발생하다가, 움직이거나 다른 일을 하면 떨림이 멈춘다”고 설명했다. 가만히 있는데도 신체 한쪽에서 떨림 증상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파킨슨병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처음엔 통상 팔?다리 끝의 근육에서 시작해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규칙적으로 비비는 움직임을 갖는 것도 특징이다. 이와 달리 수전증은 가만히 있을 땐 별다른 증상이 없다가 식사하거나 글씨를 쓰는 등 움직임을 할 때 손 떨림이 발생한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장일 신경외과 교수는 “파킨슨병은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단순 노화로 인식하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평소 이상 증세가 보이면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초신경병증 예방을 위해선 흡연과 과도한 음주는 피하고, 혈액순환을 돕는 운동을 하는 게 좋다. 다리를 꼬고 앉는 등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신경에 압박을 주는 자세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장 흔한 발병 원인이 당뇨병에 따른 말초신경 손상이므로 혈당·혈압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