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단상] 그날 이야기들
2025-02-21 (금) 12:00:00
이희숙 시인ㆍ수필가
일 년에 한 번씩 뵙는 분들이 있다. 한국에서 제자 양성을 위해 교사로 봉직한 분들이 따뜻한 캘리포니아에서 노년을 마무리하고 계신다. 해마다 참석하는 인원수가 감소한다. 작년에 밝은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올해엔 보이시지 않는다. 돌아가신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차편도 없는 내가 동창회에 참석해 심부름이라도 하려고 애쓰는 이유다.
1부 순서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동문 선후배들과 인사를 나눈 뒤, 2부에서는 지난날 가슴에 품고 있던 회포를 풀어내며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난센스 게임, 시 낭독과 합창을 하며 한층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동문 간의 친목을 더욱 돈독히 하고, 앞으로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타국에서 동창회를 개최했던 최 선배님은 지난날을 회상하시며 이야기했다. 모교 교수님을 초대하고 신문 광고로 동창들을 모이도록 한 것이 출발이 되었단다. 매해 은사님들을 한국에서 초청해 모시고 환영 의미로 서부 관광을 주선했단다. 자택에 모시고 동창들과 시간을 갖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고 했다. 이제 90에 다다른 나이가 되고 보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서글프다고 했다.
정 선배님은 젊은 날 도전하고 싶었던 산티아고 40일간 순례길을 80이 가까운 나이에 다녀오셨단다. 도저히 감당치 못할 꿈 같은 일이 되었음에 일정을 축소하여 열흘간 코스 일부만 완주했단다. 그런데도 다녀온 후 회복이 안 돼 힘들었다며 동창회에 가능할 때까지 열심히 참석하자고 했다. 날짜를 깜빡 잊어버리고 늦게 참석한 선배도 계셨다.
나 역시 자주 기억력이 희미해지기에 선배님들과 공감하기 위한 자작 시를 낭송해 보았다.
- 그날 버스 정류장버스가 오지 않는 요양병원 정류장이 있다
멀어져 간 그림자처럼 텅 빈 채로 남아
우리의 못다 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오랜 기억 속 장소로 멈춘 듯하지만
시간은 천천히 녹아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다
- 중략 -
버스는 오지 않는다
그러나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어르신 버스가 늦게 오나 봐요
잠시나마 마음을 달래주려 한다
기다리는 어르신네 눈빛에 편안한 쉼이 담긴다
움직이지 않는 정류장이지만 마음은 여행 중이다
기억의 조각들이 마음을 두드리며
여전히 벤치 위에 머물러 있다그동안 교사로 살면서 겪었던 많은 이야기를 꺼내어 글로 공유하자는 문집 발간 제안이 나왔다.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인사를 나누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내년에 꼭 만납시다!”
이희숙 시인은 서울 교육대학, 경희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서울문학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했다.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이며 저서로는 시집‘부겐 베리아 꽃 그늘’, 동시집‘노란 스쿨버스’,수필집‘내일의 나무를 심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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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숙 시인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