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 아침 만나자” 요구받은 네타냐후, 면담 직후 협상단 파견
▶ “이해관계 맞아떨어진 바이든·트럼프의 흔치 않은 협력 사례” 분석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평화 특사 [로이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휴전 합의를 끌어낸 원동력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 파견 효과'가 주목받고 있다.
협상을 중재해 온 아랍권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특사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한 번 만난 것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1년 노력보다 낫다"는 평가들도 나온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의 오랜 중재를 폄하해서는 안 되며, 취임을 앞둔 대통령 당선인과 퇴임하는 대통령 간의 이례적인 긴밀한 협조가 성공의 열쇠였다는 반론도 있다.
15일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 측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평화 특사의 압박이 휴전 합의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휴전 협상에 참여하기 위해 카타르 도하에 머물던 위트코프 특사는 지난 11일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해 네타냐후 총리를 만났다.
위트코프 특사는 방문 전날 저녁 네타냐후 총리 측에 전화를 걸어 면담을 요구했다고 한다.
총리의 측근들은 유대교 안식일이 지나고 나서 만날 것을 제안했지만, 위트코프는 이를 거부하고 다음 날 아침 만날 것을 요구했다.
위트코프 특사의 요구대로 토요일 면담이 이뤄졌고, 그 직후 네타냐후 총리는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니아 국장이 이끄는 휴전 협상 대표단을 카타르로 보내기로 했다.
외신들은 이 면담을 '긴장된 회의'였다고 소개하며 위트코프 특사가 휴전안의 핵심 쟁점에 대해 타협하라고 요구하는 '엄중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하마스의 협상 의향에도 강경 태세를 고수하던 네타냐후 총리가 이날 위트코프 특사가 전달한 메시지를 받고는 뜻을 굽혔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날 면담을 통해 트럼프 당선인이 마치 '받아쓰기'하듯 고분고분하게 합의를 수용할 것을 자신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자신의 위치를 깨달았다는 현지 논평가의 발언을 소개했다.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틀 뒤인 13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대표단은 원칙적으로 휴전과 인질 석방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중재국 측에 밝혔고, 세부 조율을 거쳐 다시 이틀 만에 휴전에 합의했다.
물론, 공을 오롯이 트럼프 당선인에게 돌릴 수는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당선인과 바이든 대통령의 흔치 않은 협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NYT는 이날 분석 기사에서 "휴전을 성사시키려는 트럼프 당선인의 노력은 트레이드마크인 공개적 협박을 넘어, 현장에서의 건설적 지원으로 이어졌다"며 "그는 위트코프 특사가 바이든 대통령이 파견한 브렛 맥거크 특사를 돕도록 했다"고 전했다.
위트코프 특사가 '트럼프식 압박전술'을 통해 맥거크 특사가 협상안의 실무적 난제를 풀어갈 추진력을 불어넣어 줬다는 것이다.
그 결과물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제시한 3단계 휴전안이 트럼프 당선인의 압박 덕에 현실화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민주당 출신 톰 말리노프스키 전 하원의원은 NYT에 "이번 합의는 바이든의 것이지만, 트럼프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다"고 논평했다.
이렇게 권력 이양기에 현재와 미래 권력이 협력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라고 NYT는 전했다.
그러면서 1980년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사이의 미묘했던 관계를 언급했다.
당시 이란은 카터 전 대통령이 이임한 뒤인 1981년 1월에야 인질을 석방했는데, 이를 두고 레이건 전 대통령 측이 카터 전 대통령의 선거 호재를 막기 위해 조기 석방을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보기 드문 협력이 이뤄진 것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휴전이 성사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은 정책의 정당성을 입증한 셈이 됐고,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후 다른 우선순위 정책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고 NYT는 분석했다.
다만 협력이 성과를 내자마자 둘은 재빨리 기존의 적대 관계로 돌아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합의에 대해 "끈질기고 고된 미국 외교의 결과"라며, 트럼프 당선인은 "우리의 역사적인 11월 (대선) 승리로 가능했다"며 서로 자신의 공을 내세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