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나라
2024-12-26 (목) 12:00:00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추락하고 있다. 저마다 문고리를 잡아 호가호위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생산성이 올라갈 리가 없고 잠재성장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구조적 비효율성은 수많은 기업이 쌓아 올린 성과를 훼손하면서 우리나라는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성장을 견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효율성과 성장 동력 상실의 근저에는 입법 만능주의와 인기영합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국회를 장악한 정치권력이 입법을 통해 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공직자들은 각종 규제를 통해 자신들의 권한과 이익을 확대했다. 정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기영합적 제도는 리더십을 무너뜨리고 비효율적 행태를 강화했다. 최후의 보루인 사법 기능도 몰락하면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교란되고 사회의 교정 기능도 해체되고 있다.
권력에 의한 이권 추구 행태는 인기영합적 구호에서 시작한다. 인권을 보호하려면 적법한 절차를 따라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검찰과 경찰을 처벌해야 하지만 입법자들은 증거능력 상실이라는 묘책을 내놓았다. 인권 보호라는 미명으로 만들어진 법의 혜택은 범죄자가 보는 셈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판사들도 이익 추구에 동참한다. 판사들은 거짓말도 소극적 거짓말과 적극적 거짓말로 나누어 궤변을 만든다. 다른 사람에게 위증을 부탁하는 것도 위증을 부탁받은 사람이 위증을 할 것인지 확신할 수 없으면 무죄다. 확신 여부는 판사 마음이다. 궤변은 사법의 동반자가 된 지 오래다. 그 궤변으로 엄청난 금액의 돈이 오가고 각종 범죄가 은폐되며 범죄자들이 국회에서 공생의 법안을 만들어내고 있다.
망가진 사법 기능과 입법 만능주의의 결합은 엄청난 부조리를 만든다.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경제 관련 규제 법안들을 만들어내고 망가진 사법 체제에서 큰 권력을 얻는다. 대법관 출신이나 유력 정치인이 50억 원 클럽에 이름을 올린다. 정치인들은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더 큰 권세를 누린다. 이것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실체적 진실보다 궤변이 우선인 사회가 됐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등을 치는 자들이 득세한다.
사회에 만연한 인기영합주의는 도를 넘었다. 공정과 평등을 빌미로 리더는 흔들리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평가와 보상 체제는 왜곡됐다. 공기업 평가 기준은 국민보다 이해관계자가 우선된다. 공기업 평가가 오히려 공기업을 망치고 있다. 임원이 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는 말은 사라지고 임원이 되면 급여가 줄어들어 아무도 임원을 하려 하지 않는다. 공기업 사장은 월급이 적어야 하고 근로자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다.
학생들이 교사를 평가하고 하급자가 상급자를 평가한다. 학교에는 가르치려 하지 않는 교사와 배우지 않으려는 학생들로 넘치고 공직사회와 회사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사회가 성장할 수 없다.
인기영합주의는 규제를 양산한다. 공정과 인권, 그리고 환경과 안전 등 미사여구로 점철된 규제는 실질적으로 관료와 제삼자의 권한만 강화한다. 추진되는 사업의 성과보다 추진 과정의 문제점이 더 중요하게 검토된다. 사람들은 절차만 따르고 성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하면 처벌받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원받는다. 일하는 사람의 세금 부담은 늘고 규제 위에 군림하며 나랏돈을 뿌린 사람은 성공한다. 비효율성은 커지고 경제성장의 동력은 사라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직후 정부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일론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를 중심으로 정부효율성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머스크의 해법은 예산 감축과 공무원 감원이다. 투입을 줄여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라마스와미는 리더십을 흔들고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공무원들의 행태를 비난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우리도 국가 개혁에 나설 때다.
<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