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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선거인단’ 통한 독특한 간선제…폐지시도 700여번에도 존속

2024-11-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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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민주적” 비판받고 반대여론 60% 넘지만 개헌 어려워

▶ 주별 입법으로 ‘개헌 없이 실질적 직선제 도입’ 시도 2006년 시작

5일 치러지는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엄밀히 말해 법적인 의미의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선거인단 선거'다.

법적으로 따지면 이날은 일반 유권자들이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할 선거인들'을 선출하는 날이다.

법적으로 엄밀한 의미의 대통령선거는 12월 17일 각 주의 주도(州都)와 연방 수도인 워싱턴 DC 등 51곳에 선거인들이 모여서 치를 예정이다. 대통령 당선인 공식 확정은 내년 1월 6일로 예정된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인증 절차까지 거쳐야 한다.


다만 현 제도와 관행상 일반 유권자들의 이달 5일 주별 투표 결과만 집계되면 대통령 당선인은 실질적으로 확정된다.

또 일반 유권자들이 받는 투표용지에도 '선거인 후보'의 이름은 아예 적혀 있지 않으며,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는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의 이름과 이들의 소속 정당만 적혀 있다.

이 때문에 일반 유권자들이 투표하는 5일을 '대통령 선거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상식적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간선제이므로, 전국 총득표수가 많은 후보가 자동으로 당선되는 것은 아니다. 전국 총득표 1위 후보가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밀려서 낙선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근래에는 2000년과 2016년에 이런 일이 생겼으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1824년, 1876년, 1888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은 건국 이래 200여년간 선거인단을 통한 대통령 간선제의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미국인들 다수가 불만을 품고 있다.

올해 9월에 발표된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들의 63%가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전국 총득표수가 가장 많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방안을 선호했으며, 현행 선거인단 제도 유지를 선호하는 비율은 35%에 불과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따르면 지금까지 선거인단 제도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자는 제안은 연방의회에 제출된 것만 700여건에 이른다.

현행 선거인단 제도를 지지하는 이들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인구가 많은 주와 적은 주 사이의 영향력 균형을 맞출 수 있으며, 정치적 안정성을 높이는 한편 대중영합형 정치인이 뽑힐 확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대통령이 이끄는 연방정부가 아니라 각 주 정부가 대통령선거를 관리함에 따라 이해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 간선제는 18세기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현대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고 비민주적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대선 결과가 실질적으로 이른바 '경합주'들에만 좌우되며 나머지 주 유권자들의 표는 결과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사표'(死票)가 되어버리는 문제점도 있다.

때로는 몇몇 선거인들이 일반 유권자 투표 당시와 다른 후보를 선거인단 투표에서 지지하는 '배신투표'를 한 적도 있다. 다만 지금까지 발생한 '신의 없는 선거인'(faithless elector)들의 '배신투표'는 항의 표시 등을 위한 상징적 행위였을 뿐이고, 최종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현행 제도가 18세기와 19세기에 흑인 노예에게 투표권은 주지 않으면서 인구 계산에는 반영하는 수법으로 의석수와 선거인단 수를 늘리려는 인종차별적 발상에 뿌리를 둔 것이라는 역사적 비판도 나온다.

법제사와 헌법학 전문가인 시카고대의 앨리슨 러크로이 교수는 미국 공영방송 NPR에 선거인단 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설명하면서 "2024년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유권자들과 최종 결정 사이에 이런 중간 기구를 두는 것이 민주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대통령 간선제를 설계할 때 연방의회에서 선출토록 하지 않고 선거인단이라는 임시기구를 둔 이유를 "대통령이 연방의회에 과도하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선거인단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할 때만 구성되는 임시기구이며 상시적 권력을 갖지 않으므로, 이를 통해 권력 남용이나 집중의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로는 선거인단은 538명으로 구성되며 이 중 과반, 즉 선거인 270명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당선된다.

미국의 50개 주와 워싱턴DC에 각각 배정되는 선거인 수는 각각 해당 지역에 배당된 연방의원 수(상원의원과 하원의원 합산)와 똑같으며, 적은 곳은 3명, 많은 곳은 54명이다.

50개 주 중 거의 모두에 해당하는 48개 주는 '승자독식' 방식으로 선거인단을 선출한다.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주의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한 대통령후보가 있다면, 그 주에 배정된 19명의 선거인단을 그 후보가 통째로 가져가는 식이다. 워싱턴DC(선거인 3명)도 마찬가지로 한다.

다만 메인(선거인 4명)과 네브래스카(선거인 5명) 등 2개 주는 해당 주 전체로 따진 다득표자에게 선거인 2명씩을 배정하고, 연방하원의원 선거구별로 따진 다득표자에게 선거인 1명씩을 배정하므로, 제도상 승자독식은 아니다.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단 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려면 절차가 지극히 까다로운 개헌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별 입법을 통해 실질적인 직선제 도입 효과를 노리는 '전국 총투표 주(州)간 협약'(NPVIC·National Popular Vote Interstate Compact)이라는 시도가 2006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각 주별로 "우리 주의 최다득표자가 아니라, 미국 연방 전체의 최다득표자에게 우리 주의 선거인단을 몰아주기로 한다"는 입법을 해놓는 것이다

이런 법이 통과된 지역들의 선거인 수 합계가 과반인 270명에 이르게 되면, 개헌을 하지 않고도 직선제 도입과 사실상 똑같은 결과가 보장된다.

협약상 입법은 주별로 미리 해 놓되 각 주에서 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시점은 일단 미뤄 놓고, '선거인 270명 확보' 시점이 되어야 그 입법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해 뒀다.

올해 11월 기준으로 17개 주와 워싱턴DC가 이 협약에 따른 입법을 완료했으며, 이에 따라 선거인단 209명이 확보돼 있다.

즉 주간 협약을 통해 '실질적 직선제 도입'까지 확보해야 하는 추가 선거인 수는 61명이다.

다만 주들끼리 체결한 이런 협약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헌법상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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