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가까이 직무정지 우려도…1차장 대행체제, 수사·재판에 모두 영향
▶ “개별 기관장 탄핵, 본질 안 맞고 정치적… ‘직무정지의 정지’ 가능해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10월18일(한국시간)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수원고검,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무혐의 처분을 이유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탄핵을 추진하면서 '수사 마비'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지휘 공백이 발생하면 각종 사건 처리에 차질이 생기는 등 수도 서울의 범죄 대응 역량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지검은 최고 수준의 수사가 필요한 난제를 처리하는 곳이다. 경찰청과 국세청 등 주요 권력기관 수사도 지휘한다. 지방검찰청 중 인원이 가장 많고 수사 건수는 약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추적 기관이다.
현재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의혹·위증교사·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공소 유지와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 방문 의혹,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 야권 인사들이 연루된 수사도 맡고 있다.
다수당이 언제든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켜 수사기관 업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현 제도를 손질해 권한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탄핵안 가결 전망…'6인체제' 헌재에 직무정지 장기화 가능성
3일(이하 한국시간) 법조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번 달 28일 국회 본회의에 이 지검장 탄핵소추안을 올릴 예정이다.
중앙지검이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해 면죄부를 줬다는 이유다.
본회의에 올라가면 압도적 과반인 민주당 주도로 가결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탄핵소추안은 재적 의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된다.
국회에서 서울중앙지검장 탄핵안이 가결되는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무혐의 처분을 이유로 검사장이 탄핵되는 것도 처음이다.
가결되면 직무 수행은 즉시 정지된다. 헌법재판소가 심리를 거쳐 국회 소추를 기각하면 즉시 복귀하고, 탄핵을 결정하면 면직된다.
직무정지 기간은 짧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소추된 현직 검사들 사례에 비춰보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1년 가까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통상 검사의 인사 기간이 1년임을 고려하면 인사 자체가 무력화되는 결과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공소권 남용 의혹으로 지난해 9월 21일 탄핵소추된 안동완 검사는 올해 5월 30일 헌재가 기각해 약 8개월 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처남 마약사건 수사 무마' 등 비위 의혹으로 지난해 12월 1일 탄핵소추된 이정섭 검사의 경우 올해 8월 29일 소추가 기각돼 약 9개월 만에 직무정지 상황을 벗어났다.
'고발사주' 의혹으로 재판 중인 손준성 검사장은 지난해 12월 1일 탄핵소추안 의결 뒤 11개월째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퇴임 헌법재판관 3명의 후임자를 선출하지 않아 헌재가 6인 체제로 운영 중인 상황을 고려하면 앞선 사례들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낸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재판관 6명으로 심리가 가능해졌고, 탄핵심판 인용을 위해선 6명 이상 동의가 필요해 이론상 선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결과가 불러올 파장이 큰 사안인 데다 재판관 의견이 엇갈린다면 선고가 지연돼 직무정지 상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
◇ 1차장이 대행…"다른 차장 사건에 방향제시 어려워"
이 지검장 직무가 정지되면 중앙지검의 수사와 공소 유지 업무는 큰 타격을 입는다.
행정 업무와 달리 수사 업무 특성상 검사장의 결심이 중요하고 강제수사 돌입 등에는 신속한 판단이 필수인데, 수장 부재로 적시에 결정하지 못하면 범죄대응 역량이 크게 약화한다.
형사사법 업무를 하는 검찰 특성상 평검사-부장-차장을 거쳐 검사장까지 결재 과정에서 '깎고 다듬는' 기능이 중요한데, 최종 결정에 차질이 빚어진다.
검찰청 사무기구 규정에 따라 형사부 사건을 지휘하는 1차장검사가 지검장 직무를 대리하게 되는데, 2∼4차장 산하 공공수사부나 반부패수사부 사건까지 모두 지휘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위증교사 혐의 사건의 공소 유지 역시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꼽히는 업무다.
현재 중앙지검은 이 사건들에 대해 수사 검사가 기소 후 재판(공소유지)까지 직접 관여하는 '직관'을 하고 있다.
15일과 25일로 각각 예정된 이들 사건의 1심 선고 직후 이 지검장이 탄핵소추된다면 지휘 공백 속에 항소 여부와 전략 등을 수립해야 한다.
이 밖에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 외유성 방문 및 샤넬 재킷 미반납 의혹, 현역 의원 다수가 연루된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수수 의혹 등도 수사 차질이 예상된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최종 책임을 지는 검사장이 없으면 수사팀은 사건 처리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어 중요 사건 처리가 늦춰질 것"이라며 "대검찰청과 업무 협의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도 "중앙지검 사건 목록 자체가 상당한데, 1차장 대행 체제에서 다른 차장 산하 사건에 적극적인 방향을 제시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수당 결정만으로 얼마든지 탄핵소추안을 의결해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현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무원이 헌법을 침해했을 때 파면하고자 만든 탄핵 제도의 본질에 맞지 않게 국회의 권한 남용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검장 출신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국회가 최고 책임자가 아닌 개별 기관장이나 검사에 대해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굉장히 정치적"이라며 "호랑이를 잡아야 할 총으로 토끼를 잡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탄핵안만 통과되면 바로 직무정지가 돼 버리는 현 제도는 국가 기능을 훼손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적어도 '직무정지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