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명 중 4명 “원치않은 사유 퇴직”
▶ 밀려난 고령층 저임금 일자리 전전
▶정년 도입 대기업, 중소기업 대비 5배
▶“계속고용장려금 등 지원책 확충을”
60세 이상으로 정한 법정 정년이 현장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는 근로자가 대부분인데 고용시장의 고임금 일자리만 정년 혜택을 보는 불평등한 구조 탓이다. 법정 정년이 제대로 안착되지 못한 데는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퇴직 문제를 연구하는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2022년 발간한 은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55~64세 연령층의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평균 49.3세로 조사됐다. 법정 정년 60세 보다 10년 먼저 직장을 떠나는 것이다. 주된 일자리란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을 뜻한다. 이후 여러 기관의 통계에서도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50세 초반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련의 분석은 법정 정년이 고용을 지키지 못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연금센터가 추가 조사한 퇴직 사유를 보면 권고사직, 정리 해고, 사업 부진, 조업 중단, 직장 휴·폐업 등 원치 않는 조기 퇴직이 41.3%였다. 반면 정년 퇴직은 9.6%에 그쳤다. 당초 정년제를 도입한 기업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사업체 노동력 부가 조사에 따르면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장은 22%에 그쳤다. 근로자 30인 미만은 19.5%로 평균보다 낮았다. 300인 이상은 94.3%로 30인 미만의 4.8배다.
문제는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난 고령층이 고용시장을 떠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늘었고 생계를 위해 일이 필요한 고령자들도 넘쳐난다. 통계청의 지난해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고령자가 근로를 희망하는 이유로 절반이 넘는 55%가 ‘생활비 보탬’을 꼽았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달 5일 국회에서 열린 정년 연장 입법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한 발표에 따르면 55~79세의 근로 희망 연령은 73.3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비중이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고령층의 소득을 분석한 결과 50세 이상에서는 12.9%가 월 85만 원 미만을 벌었다. 65세 이상일 경우 이 비율은 35.5%까지 두 배 넘게 뛰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임금 연공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고임금과 저임금 일자리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진 구조 탓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면 임금 절벽을 마주하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2021년 분석에 따르면 근속 1년 미만 임금을 100으로 할 때 근속 30년 이상 임금은 한국이 2.95배다. 우리보다 일찍 초고령사회에 맞는 고용 모델을 갖춘 일본(2.27배)을 넘어서고 프랑스(1.63배)·영국(1.52배)과 비교해서는 두 배가량 높다.
저임금층 문제 해결을 위해 연금 수령과 법정 정년 일치를 주장하면서도 법정 정년 연장이 고용시장의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법정 정년 연장은 보편적 혜택을 확산하는 가까운 방안”이라면서도 “정년 연장이 고임금인 노동층 일부에만 적용된다면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고령층 고용 지원 제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대표적인 지원책은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재고용할 때 비용을 지원하는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이다. 하지만 올해 1~8월 지원액은 125억 7300만 원으로 2022년 226억 3100만 원 대비 약 56% 수준이다. 지난해 716억 500만 원이 지원됐던 ‘고령자 고용지원금’도 올해는 449억 7800만 원으로 약 63%에 그쳤다. 계속고용 방안을 논의 중인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 계속고용위원회는 9월 25일 회의에서 고령층 일자리 지원 사업의 낮은 효율성에 대한 개선을 주문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계속고용과 관련된 제도를 실제로 현장에서 작동하는 데 조금 소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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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