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렌셔길 또 빈 건물 화재
▶재개발 지연 등으로 방치
▶ 주요 간선도로변만 10여곳
▶“노숙자 몰려 대책 시급”
LA 한인타운 크렌셔 블러버드 선상 올림픽 인근에서 낙서가 범벅이 된 채 방치된 빈 건물이 지난 23일 화재로 불에 타 폐허처럼 변해 있다. [박상혁 기자]
재개발을 이유로 오랫동안 방치돼 왔던 LA 한인타운 지역 빈 건물에서 노숙자들의 실화나 방화로 추정되는 대형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한인 업주와 주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3일 저녁 6시54분께 한인타운 한복판 올림픽과 크렌셔 교차로 남쪽 빈 건물(1023 S. Crenshaw)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 불로 인해 대형 빌보드에 불이 옮겨 붙었으며, 바로 옆 주유소로 불이 번졌을 경우 자칫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으나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들의 신속한 진화작업으로 43분만에 불길을 잡았다.
화재 다음날인 24일 정오 무렵 불이 난 현장은 붕괴 직전의 낡은 건물과 상단이 반쯤 타버린 빌보드로 아수라장 상태였다. 빈 건물과 공터를 둘러싼 펜스는 중간 중간 파손돼 노숙자들이 출입하기에 충분해 보였으며, 빈터에는 노숙자들이 끌고 왔던 것으로 보이는 카트와 고기를 구워먹는 전기 그릴 등이 쓰레기와 함께 널부러져 있었다.
화재 현장과 인접한 에코 주유소의 한 종업원은 “이 건물은 오랫동안 비어져 있어 노숙자들이 수시로 들락날락 거렸던 곳”이라며 “화재가 발생했을 때 우리 업소로 불이 옮겨 붙을까봐 혼비백산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올해 하반기 들어 LA 한인타운 빈 건물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기는 지난 7월 8가와 호바트의 구 동일장 건물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20년 동일장이 폐업한 이후 비어 있는 건물에 노숙자들이 건물 뒤쪽에 구멍을 내고 침입, 건물 내에서 마약을 하고 불을 지펴 밥을 해 먹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지속돼 왔다.
최근 몇년 동안 한인타운 곳곳에서 야심차게 추진되던 재개발 프로젝트들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공사가 중단되거나 착공이 연기되고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이른바 ‘유령 건물’로 불리는 빈 건물은 올림픽과 윌셔, 8가 등 주요 간선도로에만 줄잡아 10여곳에 이른다.
여기에 재개발을 위해 기존 건물을 허물고 공터로 남아 있는 곳도 10곳 이상이다. 오랫동안 버려진 유령 건물은 갱단들의 낙서로 도배됐고, 빈 건물과 공터는 홈리스들의 아지트로 변신한지 오래다. 빈 건물과 공터를 점령한 홈리스들이 전기를 불법으로 끌어들여 사용하다 이처럼 대형 화재로 번지는 사례도 허다하다.
한인사회 최대 부동산 개발사인 ‘제이미슨’ 소유 건물 몇 곳도 유령 건물로 남아 있다. 제이미슨은 윌셔와 세인트 앤드류 코너에 위치한 역사적 건물인 윌셔 프로페셔널 빌딩 뒷편 주차장 부지에 8층, 227개 유닛의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 신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이미슨은 LA시 사적지로 지정된 아트 데코 스타일의 14층 윌셔 프로페셔널 빌딩의 외관을 유지하면서 이 건물을 추후 거주용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정확한 활용 여부가 공개되지 않은채 방치되고 있다.
크렌셔 길을 따라 윌셔가 사무실로 출퇴근 한다는 이모씨는 “이번에 불이 난 곳은 얼마 전에도 화재가 발생했던 곳”이라며 “한인타운 곳곳에 재개발을 추진하다가 방치된 빈 건물들이 산재해 있는데 또 다른 대형 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커뮤니티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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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