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고궁)도 톈안먼 광장도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어요. 예약을 못 했다고 아이들이 울더라고요.”
1일 중국 왕푸징 거리에서 만난 리 모 씨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중국 허베이성 바오딩에 사는 그는 국경절 연휴를 맞아 부모님, 아내, 아들 두 명과 베이징 나들이에 나섰지만 주요 관광지의 예약이 모두 마감돼 갈 수가 없었다. 리 씨는 어쩔 수 없이 ‘예약이 필요 없는’ 관광 명소들을 둘러보고 아이들을 위해 동물원에 도전할 예정이다. 이날 오후 현재 자금성, 톈안먼 광장 등 인기 관광지 대다수의 예약이 6일까지 어려운 상태다.
국경절은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을 선포한 것을 기념하는 중국 최대 명절 중 하나다. 이날부터 7일까지 국경절 황금 연휴를 맞은 중국은 최근 나온 경기 부양책 효과까지 더해지며 소비 회복의 징후가 곳곳에서 확인됐다. 베이징 최대 상점가 왕푸징은 쇼핑 인파로 북적였고 식당에는 대기 손님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여행을 온 한 커플은 “점심을 먹기 위해 40분째 기다리고 있다”며 “차례가 오려면 아직도 20팀 넘게 남았다”고 말했다.
왕푸징 중심에 위치한 쇼핑몰 ‘인타이in88’ 역시 쇼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화웨이 매장에서 만난 궈 모 씨는 최근 출시된 두 번 접는 트리폴드폰 메이트XT를 만져보며 구매를 망설였다. 그는 “직접 보니 생각보다 가볍고 큰 화면이 마음에 든다”며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휴대폰과 패드로 사용할 수 있어 괜찮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날 베이징 시내 관광지 스차하이 일대에도 가족·커플·친구들로 보이는 다양한 유형의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은 국경절을 맞아 오성홍기를 직접 손에 들거나 머리띠·스티커 등으로 장식한 채 거리를 활보했다.
불과 2주 전 중추절 연휴만 해도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던 것과 달리 중국의 소비 시장은 국경절 연휴를 맞아 긍정적인 신호들이 감지된다. 관영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교통운수부는 연휴 기간 약 19억 명, 하루 평균 2억 7700만 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19.4% 늘어난 수치다. 온라인여행사(OTA)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국경절 여행’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27배나 급증했다.
중국 당국은 춘제(중국 음력설), 노동절과 함께 중국의 3대 연휴로 꼽히는 국경절 연휴를 내수 활성화의 기회로 삼는다. 중국의 소비 침체 우려가 확산한 가운데 올해 국경절을 앞두고는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잇따라 발표되며 ‘돈을 쓰라’는 분위기가 여느 때보다 강하게 조성됐다. 지난달 24일 ‘경기 부양 패키지’를 시작으로 연이어 나온 관련 정책 덕에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은행 지급준비율을 낮추고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과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등 정책금리를 인하해 시중에 돈을 풀면서 가장 먼저 주식시장이 반응했다. 상하이와 선전 증시는 최근 1주일 새 20% 안팎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주가 급등에 신규 주식계좌 개설 수요가 몰리자 증권사들은 국경절 연휴도 반납한 상태다.
상하이시와 쓰촨성 등은 호텔·영화관·식당·스포츠 이벤트 등에 이용 가능한 쿠폰을 발행하며 소비 촉진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국경절 연휴를 시작으로 최대 쇼핑 이벤트인 솽스이(11월 11일) 할인까지 이어질 경우 4분기 내수 소비가 폭발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다.
다만 국경절 특수가 ‘반짝 반등’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민은행 정책고문을 지낸 경제학자 위용딩은 최근 한 포럼에서 “소비 촉진만을 내세워 올해 5%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극적으로 반등하기 전까지는 중국 경제가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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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김광수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