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함”은 “바름”이어야한다

2024-09-24 (화) 이상훈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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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마음(良心)은 어진(仁) 마음이다. 그러나 선함의 바닥에는 바름(正)이 있어야 한다.

공자가 말한 어질 인 (仁) 은 사람을 똑같이 여겨야한다는 (사람 인자 변에 두이 자 ) 뜻이다. 즉, 남을 나처럼 사랑하고 동등하게 대하라는 뜻으로 이는 공자 철학의 핵심 사상이다.

남을 나와 똑같이 대함이 “바름(正)”의 모체라는 것이다.


내가 30년을 살았던 동네, 낡은 건물의 뒤편에 조그만 Lock Smith Key shop 이 있다.

이집은 3대가 한 자리에서 동네 사람들의 각종 키를 깎아주고 키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 집이다. 1924년부터 지금 까지 무려 100년을 한 자리에서 대물림 하면서 장인정신을 실천하는 집이다.

지금은 창업주 할아버지의 증손자들 형제가 운영하고 있는데, 풍을 맞아 다리를 절름거리는 아버지와 함께 교대로 샵 에서도 일을 하고 때로는 손님들의 요청이 오면, 찾아가서(Mobile Service) 열쇠나 자동차 키와 아파트나 하우스의 Lock 에 관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조용히 사업의 외연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을 본다. 할아버지들과 아버지 시절의 아날로그 기술을 컴퓨터 시대의 디지털 기술로 업그레이드(up-grade) 했음은 말 할 것 없다.

9개월 전쯤에 리모트 콘트롤 기능이 탑재된 자동차 키 하나를 여기서 만들었었다, 그런데 새로 만든 키의 하우스 (쉘) 에 조그만 볼트가 빠져 달아나서 키의 몸체가 쉽게 열렸다. 고치는 것을 미루며 그냥 쓰다가 작동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시동을 걸어도 웬 일인지 엔진이 자꾸 꺼졌다. 스타트 모터의 고장인가 싶어서 매케닉을 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차를 토우 해서 거리가 꽤 멀었지만 이 키 샵 으로 오게 됐다. 고장 났던 리모트 키는 부속을 새로 주문하여 다시 만들어 받았는데, 이번에도 오리지날 키와 함께 다 같이 재설계 (Re-programming) 하여 문제가 없도록 고쳐 놓았다. 이를 위해 수고한 시간과 항상 친절한 청년의 모습이 흐뭇하여 수고비를 좀 더 주리라 생각하고 수고비가 얼마냐고 물으니, 새로 산 부속 값만 받으면 된다면서 40달라 라고 했다. 너무 의외라서 팁 20달라를 얹어 주니 깜짝 놀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9개월 전에 이미 팁을 받았고 그 때 다 지불했으니 더 받을 수 없다며 완곡히 거절 했다. 9개월 전에 지불했던 가격은 자동차 딜러나 여타의 키 샵에서 부르는 값의 2/3 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는 폴(Paul) 이라는, 준수한 용모의 이 집 막내아들 이었다. 두어 번 더 주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내 뜻(?) 은 이루지 못했고, 그 청년의 아름다운 미소와 내 고마운 미소를 더해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악수를 나눈 후 떠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100년 동안 가업이 대 물림을 해 오면서 ‘선함과 바름’이 함께 전수된 청년의 얼굴은 몹시 해맑았다. 그 날은 남가주의 무더위가 불구덩이 속처럼 맹위를 떨치던 날, 갈 때는 몸과 마음이 무더웠지만 돌아 올 때는 청년한테서 받은 청량한 기분이 온몸을 식혀주고 있었다.

선한 마음의 바닥에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바름의 잣대가 있어야 한다. 선하지만 판단과 처신이 불분명 하면 자칫 무능함이 되고 만다.

더하여, 그 선함은 선함 자체로 끝이 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져서 그 영향력을 남들에게 끼치고 또한 널리 펴야 한다.

팬데믹 이후 요즘, 우리 타운 내 업계에 바가지 상혼이 만연하고 있다는데, 업계가 무릇 이 청년의 바른 상도와 사업정신을 본 받았으면 한다. 지금은 손해를 보는 듯 하지만 영원한 고객을 확보하게 되니 결국 어느 쪽이 이득이겠는가.

청년의 바름에서 2천 5백 년 전 춘추시대의 공자를 본다.

<이상훈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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