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천적 복수국적법 ‘족쇄’ 장애인까지… 피해 속출

2024-09-23 (월) 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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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장애인체전 참가 위해 한인 2세 총영사관 문의

▶ 애매모호한 회피성 대답만
▶“국적 자동상실제 부활을”

메릴랜드주에 거주하고 있는 나성구(26)씨는 출생 당시 아버지가 시민권자, 어머니는 영주권자였다. 나씨의 부모는 미국에서 결혼했고 한국에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다. 자폐장애인이지만 운동에 뛰어난 소질을 보인 나씨는 지난 6월 미주한인장애인체육대회 볼링 부문에서 우승하며 미주 대표로 선발돼 내달 말 한국 김해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전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해당돼 불안하니 한국에 나가지 말라고 말려 나씨의 아버지가 워싱턴 총영사관을 직접 찾아가 장애인 아들의 한국 방문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총영사관 측에서는 아들이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국적이탈을 안했기에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를 신청할 수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려 이번 한국 방문이 힘들 것이라 답했다. 이에 나씨의 아버지는 “체전이 곧 다가오니 그냥 미국 여권으로 한국 방문이 가능한가” 물었고 담당자는 “한국 방문은 복불복이다. 안 가는 것이 좋겠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버지니아주 센터빌에 거주하는 A씨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조카가 국무부 풀브라이트 장학생에 지원했다가 중도포기했는데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선천적 복수국적 때문이었다”며 “이런 말도 안되는 법이 있느냐”며 분개했다. 또 뉴저지주에 거주하는 B씨는 미국인 남편과의 사이에 난 딸이 방위산업체에 취업하려다 복수국적이 문제가 됐다며 딸 출생당시 본인이 영주권자였는데 국적이탈을 하지 않아 ‘복수국적의 굴레’가 씌여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한국의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독소 조항들 때문에 무고한 피해를 보는 미국내 한인 2세들의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 법무부가 미국내 11개 한인단체가 지난 7월 제출한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 대통령 청원에 대한 거부 의사 답변을 표명했다는 소식에 미주 각지 한인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11년째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을 주도해 온 전종준 변호사는 “나씨나 A, B씨 모두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 이유는 부모 양계주의 채택으로 인해 1998년 6월14일 이후 출생자로서 부 또는 모가 한국 국적자이면 자녀는 자동으로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되기 때문”이라며 “부모 양계주의가 채택되면서 외국인 남편과 결혼한 사람들의 자녀도 선천적 복수국적에 포함돼 복수국적의 피해 범위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나씨의 경우 예외적 국적이탈허가 신청을 하려면 부모가 먼저 국적상실신고 및 혼인 신고를 하고 난 후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몰라서 신고 못한 것은 정당한 사유 입증이 안되고 또한 직업 선택에 상당한 제한이나 불이익 증명이 어려워 예외적 국적이탈허가 신청이 거부될 확률이 높다. 신청 했다 거절되면 한국에 출생신고만 한 격이 되고 복수국적의 증거만 남기는 불이익이 생긴다”고 비판했다.

전 변호사는 “나씨와 같은 선천적 복수국적자 중 국적이탈 미신고자가 한국 방문에서, 법무부는 90일 방문이 가능하다고 했으나, 병무청은 이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고, 미주 총영사관에서는 ‘책임 질 수 없다’는 식으로 법해석이 다르다. 이로 인한 혼선과 피해는 고스란히 재외동포의 몫이 된 지 오래”라고 개탄했다. “설마 장애인 한인 2세가 전국 체전 참가차 한국 갔다가 병역기피자로 체포되는 일이 있겠는가라는 말도 나오지만 부모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국회와 정부는 하루속히 국적자동상실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홍준표법’이라고도 불리는 2005년 국적개정법은 출생신고가 안된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은 병역과 무관하다는 제 12조 1항 단서를 삭제해,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국적이탈을 안 하면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병역기피자로 38세까지 국적이탈을 못 하게 했다. 이에 한인동포들은 국적자동상실제 부활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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