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회(Detour)

2024-09-10 (화)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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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우회하라고?” 이 지점 부터 5번 고속도로를 막았으니 돌아가라고 네비게이터가 말한다. 오늘 목적지는 보니타 등대(The Point of Bonita Lighthouse)다. 우리 집에서 404 마일을 5번 북쪽을 향해 운전 해야 한다. 캐스테익 (CASTAIC)에서 우회했다. 해 뜨기 바로 직전의 가장 어두운 새벽이고, 짙은 안개로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이다. 큰 길이 나오길 바라면서 캄캄하고 꼬불꼬불한 자드락길을 수 없이 오르고 내렸다. 우리 차 앞 뒤로 차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처음 가 보는 미지의 길이다.

두려움이 밀려오는 깊은 숲 속을 얼마나 오래 지났을까? 시간을 보니 한 시간 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3~4시간 걸린 기분이다. 그 때, 동쪽 산위에서 불덩어리 같은 해가 작열하게 솟아올라 새까맣던 산자락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와 ~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한 일출에 우리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쁨의 환호성이 터졌다. 산 넘어오는 낮은 자락의 작은 마을은 테마극장처럼 나무에 메달아 놓은 전구들이 별처럼 반짝거리고 하늘의 별들은 적막한 깊은 산 위로 쏟아지고 있다.

사전에 우회(detour)하다는 말은 ‘곧바로 가지 않고 무언가를 피해서 돌아서 가다.’라 고 써 있다. 생각해보니 근 반세기의 나의 이민 생활에도 수 없이 많은 우회를 했다. 부푼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 시카고에 도착했다. 춥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첫째 아들을 낳았다.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정착하려 했던 계획을 바꾸었다. 작은 승용차에 트레일러를 달고 가는 와이오밍(Wyoming)주의 눈이 쌓인 산 중턱에서 차가 뒤로 밀려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견디며 오래곤 주로 이사했다. 얼마나 무모한 젊은 시절이었던가! 오래곤 주에서 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남가주로 이사를 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실수와 우회를 했다.

오늘 우리가 고속도로에서 우회하여야 했던 것처럼 우리 인생길에도 예고 없이 다른 길로 돌아가야만 할 경우가 많다. 우회로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네 삶이 평소5번 고속도로처럼 막힘없이 곧 바르게 쭉 나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늘처럼 막일 때가 있다.

어떤 장애물이 내 앞을 막을 경우가 있고 의도적으로 중간에 계획을 바꾸어 우회 하기도 한다. 걸림돌을 넘을 수 없다면 돌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계획하지도 않았던 일이 갑자기 우리 길을 막을 때는 당황하게 된다.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므로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회하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실수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게도 한다. 때로는 오늘처럼 상상도 못했던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일출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기뻐할 날이 오기도 한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도 한다. 가끔씩은 반짝이는 별과 오색찬란한 전구들로 장식한 아담한 테마극장 같은 곳을 지나게 하는 우회하는 길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도 한다.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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