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달러 거래 금지 처분 전까지 수백억 달러 규모”
최근 10여년 간 이라크 현지 은행들이 수백억 달러를 이란에 불법 송금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이날 미국 금융 감사·자문 회사 K2 인테그리티의 감사 보고서를 인용해 이라크 금융 기업가 알리 굴람이 보유한 이라크 중동 투자 은행, 알 안사리 이슬람 은행, 알 카비드 이슬람 은행 등 세 곳이 2022년까지 약 10년간 보인 의심스러운 달러 거래 흐름에 대해 소개했다. 해당 은행들은 2022년 미 재무 당국으로부터 달러 거래 금지 처분을 받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은행은 미 당국의 처분 전 6개월 동안 총 35억 달러(약 4조 7천억 원)를 해외로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금은 대부분 정체가 불분명한 아랍에미리트(UAE)의 회사 몇 곳으로 보내진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해당 자금에 관한 송장 정보가 제한돼 있고 지나치게 단순했다며 '돈세탁의 위험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자금 송금은 미국이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구축한 임시 금융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당시 이라크의 석유 판매 수익을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보관하고, 이를 다시 이라크로 보내 현지 민간 은행들이 상업용 송금 업무를 처리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다만 이 임시 시스템에서는 이라크 송금 자금의 해외 수신인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없어 감시 기능이 미진했다고 WSJ은 짚었다.
해당 시스템은 2011년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한 이후로도 유지돼 왔다. 이를 이용해 지난 10여년 간 굴람의 은행이 해외로 송금한 자금은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고 WSJ은 전했다.
미국은 해당 자금이 이란과 그 대리세력에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미 당국자들은 굴람의 은행들을 포함한 이라크 은행 20여 곳이 위조 송장 등을 이용해 이란과 그 대리세력에 달러를 전달하는 데 관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미 재무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월 바그다드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이라크 당국자들에게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준군사조직인 쿠드스군과 이라크 민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이라크 은행들이 미국 달러에 대한 접근권을 "고의로 악용했다"고 지적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자금이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브라이언 넬슨 전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WSJ에 미국은 의심스러운 이라크 은행들이 연준 시스템을 이용해 달러를 이체하는 데 대해 조처했다며 "자금이 이란 정권을 지원하는 데 유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재무부의 주요 임무"라고 말했다.
굴람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자금세탁이나 이란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