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스, 트럼프 화 돋우며 ‘자폭’ 유도…긍정적 이미지 구축이 부담
▶ 트럼프, 경제·이민 정책 집중하면 유리…참모 조언 따를지 미지수
▶ 해리스, 검사 시절 토론 기량 연마…대선 토론 경험은 트럼프가 많아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0일 첫 대선 TV토론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이번 토론은 선거일까지 60일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치르는 데다 현재로선 추가 토론 일정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지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특히 그 부담은 단 한 번의 토론 패배 때문에 후보 자리에서 물러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체한 해리스 부통령에게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출마한 지 두 달도 안 된 해리스 부통령은 이번 토론에서 '존재감 없는 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씻어내고 유권자에게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과 비전을 제시하는 게 과제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의 '자책골' 덕분에 앞선 토론에서 쉽게 이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더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되는 해리스 부통령을 상대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정책 현안에 집중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8일 언론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이번 토론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해리스와 트럼프 캠프 모두 이번 토론을 "트럼프에 대한 생각은 정리했지만 해리스를 여전히 궁금해하는 '스윙 보터'(swing voter·부동층 유권자) 수백만명에게 해리스를 정의할 중대한 순간"으로 간주한다고 보도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자기 파괴적인 본능"을 끌어내면서 자신을 "차분하고 대통령다운" 후보로 내세우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논란이 될만한 발언을 하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도록 자극하면서 자신은 그와 차별화되는 정책 구상을 제시한다는 전략이다.
2016년 대선 토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NYT 인터뷰에서 "그녀가 미끼에 낚여서는 안 되고 그를 낚아야 한다"면서 "내가 그는 '러시아의 꼭두각시'라고 했을 때 그는 무대에서 그저 식식거리기만 했다"고 회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그간 유세에서 주장했던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진지하지 않은 남자"이며 재선에 성공할 경우 "매우 심각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할 방침이다.
해리스 부통령 측은 그녀가 검사 시절 법정에서 배심원단을 설득하면서 체득한 자제력, 타이밍, 유머 감각 등의 기량을 활용해 유권자와 교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토론 경험이 더 많고 노련한 상대라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하려면 거의 초인적인 집중력과 자제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해리스 부통령의 공략 포인트를 예상해 대비하려고 하지만, 문제는 트럼프 본인이다.
참모들은 그에게 "심술궂은 불한당 트럼프"(mean bully Trump)가 아닌 "유쾌한 트럼프"(happy Trump)가 되어야 한다며 토론에서 인신 공격이 아닌 정책에 집중하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특히 여론조사상 유권자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더 후한 점수를 준 경제와 국경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현 행정부의 부통령인 해리스 부통령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공략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렇게 할지는 미지수다.
그간 유세에서 그는 정책보다 인신 공격에 더 집중했고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 정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 등 일부 도를 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참모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뿌리깊은 경멸감을 표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상대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을 똑똑하고 근면하다고 여겨 존중했지만, 해리스 부통령은 우둔하다고 생각하며 사석에서는 그녀를 여성혐오적인 표현으로 묘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과 1차 토론에서 과도한 말 끊기와 비방으로 토론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은 뒤 2차 토론에서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는 해리스 부통령이 토론에서 잃을 게 더 많다는 견해도 있다.
한 트럼프 우군은 "대부분 유권자는 이미 트럼프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토론 모습이 그런 견해를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크지 않다"면서 "이번 토론은 유권자들이 아직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지 않는 카멀라 해리스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말했다.
정책 부문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낙태권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장을 파고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낙태 등 생식권 문제에서 여성 유권자를 잡으려고 공화당의 기존 정책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가 보수층이 반발하자 궤도를 수정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의 '우클릭'을 문제 삼을 수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2020년 대선 경선 당시 셰일가스 추출을 위한 수압 파쇄법(fracking·프래킹)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최근 철회한 바 있다. 수압 파쇄법은 대선 승부처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중요한 현안이다.
그는 지난달 CNN 인터뷰에서 왜 입장을 바꿨냐는 질문에 "내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했지만,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5일부터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의 호텔에 체류하며 사실상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토론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전날 피츠버그의 한 가게에서 취재진과 만나 트럼프 전 대통령을 토론에서 상대할 준비가 됐냐는 질문에 "그렇다, 준비됐다"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주 유세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참모들과 만나 예상 질문을 점검하는 등 틈틈이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위스콘신주 유세에서 "내가 토론에서 그녀를 박살내더라도 그들은 오늘밤 토론에서 트럼프가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고 말할 것"이라며 토론 기대치를 낮추려는 듯한 발언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