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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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지구는 인간의 조건이다

2024-08-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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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식 목사/ 세화교회 담임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민족 시인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입니다. 학창시절 했던 국어 공부를 되돌아보면, 여기서 ‘님’은 ‘국가’를 의미합니다. 국가(나라)를 사랑하는 ‘님’에 비유해서 표현한 이 시 ‘님의 침묵’은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의 정서를 깊이 반영한 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마도, 한용운의 시에서 절절하게 외치는 것처럼 ‘국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조건에서 국가만큼 중요한 것도 드뭅니다. 국적이 없으면 난민이 됩니다. 현재 유럽대륙을 가장 괴롭히는 문제는 난민문제입니다. 얼마 전에는 유럽연합에서 난민문제로 골머리를 앓다, 결국 난민법에 대한 합의를 이루었죠. 일정 부분 난민들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정책을 정했습니다. 난민 입장에서는 감사한 결정입니다.


나라를 빼앗기면 주권이 사라집니다. 한국은 이미 그 경험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주권 없는 ‘인간’으로서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님의 침묵’처럼 애절한 노래도 부르게 된 것이죠. 그 당시 거의 모든 문인들은 빼앗긴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외에도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소설가이자 시인 김훈의 ‘그날이 오면’, 시인 이육사의 ‘광야’, ‘절정’ 등 수많은 작품들이 빼앗긴 국가, 주권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국가는 여전히 인간의 조건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좋은 나라를 세우는 일은 여전히중요합니다. 이와 더불어, 21세기에 들어 핵심적인 인간의 조건으로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책 『인간의 조건』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지구는 가장 핵심적인 인간의 조건이다”(한길사, 78쪽). 21세기에 떠오른 핵심적인 인간의 조건은 바로 ‘지구’입니다.

그동안 인류는 ‘지구’라는 인간의 조건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구는 그냥 인간이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자원’ 정도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21세기를 앞두고 사람들은 ‘지구’라는 인간의 조건을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인류 최초 기후변화 대책회의가 열립니다. 일명 ‘지구정상회담’(Earth Summit)입니다. 이와 발맞추어 한국에서도 1991년에 ‘녹색평론’이 창간되고, 이보다 앞서 1989년에는 ‘한살림선언’이 발표되고, 1993년에 김대중은 지속가능한 경제를 환경문제와 결부시켜 생각할 것을 주문합니다. 환경 문제를 단순히 경제 성장의 부차적인 문제로 보지 말고, 경제 발전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당시로서는 매우 앞선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평범하고 보편적인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 문제는 단순히 ‘기후가 변화하는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 역사에서 기후변화는 늘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21세기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기후변화는 이전 기후변화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기후변화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인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구원을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문제 라는 것이죠.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기후변화 문제에는 인간의 온갖 죄악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 입니다. 인간의 ‘조건’인 지구가 고통받는 이 시대에 세상과 발맞추어 교회는 인간의 조건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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