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 점령한 원전 화재, 일부 손상
▶ “우크라 드론 공격” “러 자작극”
▶양국 서로 책임 떠넘기며 비방전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우크라이나 내 자포리자 원전이 또다시 ‘전쟁 인질’로 전락했다.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방화 책임을 떠넘기는 한편, 상대국이 “핵 테러를 모의했다”며 거친 비방전을 벌였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진격으로 전쟁이 새 국면을 맞은 가운데, 원전이 전쟁의 볼모로 잡힌 위험천만한 사태를 국제사회도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다.
11일 영국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원전의 냉각탑에서 이날 오후 화재가 발생했다. 구조대의 진압으로 불길은 약 3시간 만에 잡혔다. 하지만 냉각탑 내부가 손상됐다고 원전을 관리하는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 로사톰은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성명을 통해 “원전에 있던 IAEA 전문가들은 수차례 폭발음을 들었고, 검은 연기가 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화재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핵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보고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화재 원인을 우크라이나에 돌렸다. 러시아가 점령 후 세운 자포리자 주정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군이 공격용 무인기(드론)를 쏘아 올려 의도적으로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우크라이나의 핵 테러”라고 비판하면서 IAEA에 적극적 대응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자작극’이라며 맞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러시아군이 시설에 불을 지른 것”이라며 “현재 방사능 수치는 정상 수준이지만, 러시아는 자포리자 원전 점령 순간부터 우크라이나와 유럽, 전 세계를 협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군이 공포감 조성을 위해 원전 냉각탑에서 차량 타이어에 불을 질렀다는 우크라이나 당국자 주장도 나왔다.
자포리자 원전은 개전 직후인 2022년 3월부터 러시아가 점령한 상태다. 이후 원전을 둘러싼 돌발 사고가 잇따라 국제사회가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많다. 지난 4월에도 자포리자 원전이 드론 공격을 받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책임 공방을 벌였다. 당시 IAEA는 긴급 회의를 열고 ‘핵 재앙’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