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인의식’

2024-08-08 (목)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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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의 종업원 근무수칙에 보면 1만5,000 항목의 메뉴얼이 있다. 어떤 맥도날드 상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빠, 엄마와 함께 햄버거를 먹고 나가던 아이가 “Bye!”하고 종업원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었다. 그때 종업원은 무뚝뚝하게 바라볼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메뉴얼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메뉴얼이라 할지라도 의외성을 가지고일어나는 돌발적인 일까지 모두 기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종업원의 의식(意識)에 달린 문제이다. 그 의식은 주인의식이다. (그레고리 번스의 ‘Iconoclast’ 중에서)

주인의식이 결여된 종업원은 메뉴얼에 적혀있는 범위를 벗어나서 생각하지 않는다. 자발적인 헌신의 자세가 희박하다. 창의적 의식이 없다. 하지만 주인의식이 투철한 종업원이라면 메뉴얼과는 관계없이최선을 다하여손님을 맞이한다.메뉴얼을 뛰어넘어 창의적인 자세로 일한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이 평범한 종교적 A 수준의 인간에서 비범한 종교적 B 수준의 인간으로 도약한 계기가 있었다.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했을 때다.

평범한 종교적 A 단계에 머무르던 아브라함의 삶이 비범한 종교적 B 단계로 돌연 비약하게 된 비밀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의 내면의식이 종 의식에서 주인의식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의식 변화는 순간적이고 혁명적이었다. 아브라함의 내면의식의 획기적 변화를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거룩한 두려움으로 전율하는 도약’ 혹은 ‘믿음의 기사(the knight of faith)’라고 불렀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인의식을 가르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것은 다만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축복만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었다. 더 이상 남에게 끌려 다니는 노예근성으로 살지 말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이끌어 낸 것이다.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는 기적이 일어나도 내면의식이 노예이면 그 인생은 노예로 끝이 난다. 출애굽(Exodus)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내면의식의 혁명사건이다.

80년을 종 의식으로 살았던 모세가 호렙산 기슭에서 하나님의 음성들 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너와 함께 하겠다. 나는 너의 전능자(Yahweh)가 되어 주겠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율했다. 이 순간 내면의식이 종 의식에서 주인의식으로 바뀌었다.

당신이 새로운 인간을 꿈꾼다면 종 의식과 결별하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주인의식으로 살라. R.A. 토레이(Torrey)는 말했다. “하나님의 무디를 크게 들어 쓰신 이유 중 한 가지는 그가 사사로운 물질의 욕심에서 해방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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